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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동맥경화’ 걸린 아시아… 시노펙의 감산,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인가

호르무즈 봉쇄에 가동률 10% 전격 축소… 하루 50만 배럴 ‘공급 증발’의 파장
중동 의존도 65% 아시아 정유업계 ‘S공포’ 확산, 국내 수급 및 물가 영향 불가피
중국 최대 정유사 시노펙은 호르무즈 해협의 교통 마비로 인한 원유 공급 부족에 대응해 정제 가동률을 10% 낮췄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최대 정유사 시노펙은 호르무즈 해협의 교통 마비로 인한 원유 공급 부족에 대응해 정제 가동률을 10% 낮췄다.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실물 경제를 정조준하면서 아시아 에너지 시장이 급격한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 정유업계의 심장부인 시노펙(Sinopec)이 원유 수급난을 견디지 못하고 전격적인 감산에 돌입함에 따라,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아시아 전역의 에너지 공급망 붕괴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Oilprice.com)가 16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중국 최대 정유사 시노펙은 최근 발생한 호르무즈 해협의 교통 마비로 인한 원유 공급 부족에 대응해 정제 가동률을 10% 낮췄다.
이번 조치는 여름철 연료 수요가 급증하는 성수기를 앞두고 단행되어 아시아 전역의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제 가동률 10% 급락의 이면… 통계로 본 ‘에너지 셧다운’ 위기


시노펙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수치상의 감축을 넘어선다. 시노펙은 평소 하루 평균 520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하며 중국 전체 석유제품 생산의 약 3분의 1을 담당하는 핵심 기업이다.

이번 10% 감산으로 시장에서 사라지는 석유제품 규모는 하루 약 50만 배럴에 달하며, 여기에 정기 보수 일정까지 겹치면서 실제 생산 감소 폭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로 로이터(Reuters)와 블룸버그(Bloomberg) 등 복수의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시노펙의 처리량 감축 규모는 최대 하루 70만 배럴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시노펙은 처리 원유의 절반가량을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어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봉쇄에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특히 이번 감산은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여름철 냉방 성수기와 4~6월로 예정된 정기 보수 시즌이 맞물리는 ‘퍼펙트 스톰’ 구간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국내 정유 4사 ‘수익성 개선’과 ‘원료 고갈’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국 정유사의 공급 공백은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에 복합적인 과제를 던지고 있다.
아시아 역내 석유제품 공급이 급감하면서 국내 정유사들의 수익 지표인 복합 정제마진은 손익분기점의 2배를 상회하는 배럴당 11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단기적으로는 수출 이익 극대화라는 반사이익을 얻고 있으나, 이면에는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위한 초고가 용선료 부담과 재고 부족이라는 실존적 위협이 도사린다.

정유사들은 중동 물량을 대체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남미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일일 용선료가 50만 달러를 넘어서는 등 물류비 압박이 한계치에 달한 상태다.

증권가와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제마진 상승에 따른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 기대감과 원유 수급 불능에 따른 가동률 하향 조정 가능성이 공존하는 전례 없는 불확실성 국면"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는 공급망 마비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정유사들 역시 시노펙과 같은 ‘강제 감산’의 경로를 밟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아시아 정유업계의 65% 절벽… ‘비축유 카드’ 실효성 논란


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에너지 안보가 가장 취약한 고리로 꼽힌다. 에너지 조사기관 우드 맥킨지(Wood Mackenzie)는 아시아 정유업계의 중동 원유 의존도가 65%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오는 4월 아시아 전역에서 하루 600만 배럴 규모의 정제 가동 중단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중동 리스크가 더 이상 장부상의 위험이 아닌 현장의 생산 차질로 전이되었음을 뜻한다.

시장의 일반적인 평가로는 현재 각국이 보유한 전략 비축유(SPR)를 투입하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아시아 경제는 가동 중단 수준의 타격을 입게 된다.

국내 정유업계 관계자는“중국 시노펙의 감산은 인접 국가들의 수급여건도 동반 악화시킬 수 있는 사안”이라며 “한국기업들도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서두르고 있지만, 중동 물량을 단기에 대체할 처방을 찾기는 쉽지 않다”라고 전했다.

국제 유가 상방 압력과 국내 물가 파동…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


이번 시노펙의 감산 사태는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경고등을 켜고 있다.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중단과 생산 감축은 아시아 역내 경유와 항공유 가격의 급등을 초래하며, 이는 곧 국내 휘발유 가격 등 소비자 물가에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유가 급등이 수요 위축으로 이어졌던 것과 달리, 지금은 물리적 공급망 자체가 끊긴 상황이라 가격 통제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1970년대 오일쇼크와 유사한 ‘공급 주도형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호르무즈의 파고는 시노펙을 넘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에너지 수입국 전체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의 비축유 방출 공조체제를 점검하는 동시에, 중동 의존도를 근본적으로 낮추는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재구조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에너지 안보가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 시노펙의 50만 배럴 감산은 아시아가 마주한 거대한 폭풍의 전조 증상일 뿐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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