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흑자 510억 달러의 역설... 한국, 미 환율 감시망에 다시 갇혔다
무역·경상수지 흑자 기준 초과, 외환 당국 '미세조정' 주권 제약 불가피
환율 압박 지렛대 삼은 자동차·반도체 추가 규제 및 자율 규제 요구 거세질 듯
무역·경상수지 흑자 기준 초과, 외환 당국 '미세조정' 주권 제약 불가피
환율 압박 지렛대 삼은 자동차·반도체 추가 규제 및 자율 규제 요구 거세질 듯
이미지 확대보기트럼프표 '미국 우선주의' 공식화... 한국 등 10개국 재지정
미국 재무부는 지난 29일(현지 시각) 연방 의회에 보고한 '주요 교역 상대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한국을 포함한 10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재지정했다. 미국 재무부 발표를 보면, 이번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결과물로 교역국의 통화 정책 분석 강도를 대폭 높인 점이 특징이다. 한국은 2023년 11월 명단에서 빠졌으나 1년 만인 지난해 11월 다시 포함됐고, 이번에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수출 호조에 발목... 대미 무역·경상수지 흑자 '위험 수위'
미국 재무부는 2015년 제정된 무역 촉진법에 따라 상위 20개 교역국의 정책을 심사한다. 한국이 다시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배경에는 역대급 수출 실적이 있다. 평가 항목 중 △150억 달러(약 21조4700억 원)를 웃도는 대미 무역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를 넘어서는 경상수지 흑자라는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이번 명단에는 한국과 더불어 중국, 일본, 대만, 독일 등 총 10개국이 포함됐으며 심층 분석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없다. 하지만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 무역 정책'을 지원하고자 분석을 강화하고 있다"며 비시장적 정책이나 통화 조작을 통한 불공정 경쟁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외환 주권 제약과 반도체·자동차 등 '환율' 넘어 '관세' 압박 우려
전문가들은 이번 재지정이 한국 경제에 단기적·중장기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커지는 국면에서 외환 당국이 시장 안정화를 위해 실시하는 '미세조정' 여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여 외국인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요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 지위를 지렛대 삼아 자동차와 반도체 등 핵심 품목에 대해 추가적인 통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산업은 환율보다는 '미국 내 투자'와 '관세'가 결합된 복합 압박에 직면했다. 최근 미 행정부는 AI 반도체 등에 대해 25%에서 최대 100%의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를 피하기 위한 조건으로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이미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나, 환율 관찰대상국 지위는 향후 미국이 보조금 지급 조건이나 추가 관세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산업은 대미 무역흑자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어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16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역대급 흑자를 기록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된 형국이다. 미 정부는 환율 문제를 명분 삼아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을 현행 유지하는 조건으로 수출 물량 제한(쿼터제)을 압박할 수 있다. 특히 원화 약세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환율 조작' 프레임에 갇힐 경우, 현지 마케팅과 가격 정책 운용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두 산업 모두 '환율 효과'라는 우회로가 차단된 채, 미국 내 생산 확대라는 정면 승부를 강요받는 형국이다.
현대경제연구원 등 민간 연구소는 미국이 환율을 명분 삼아 수출 자율 규제를 압박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환율 효과라는 '수출 훈풍'에 기대기보다 환변동 보험 가입을 늘리고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는 등 근본적인 리스크 관리 노릇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부 역시 미국 측에 우리 외환 정책의 정당성을 정교하게 설명하는 등 외교적 대응력을 총동원해야 할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