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허 괴물' 넷리스트, 구글까지 공동 피고로 지목하며 '공급망 타격' 위협
SK하이닉스 학습효과?… "천문학적 배상금이냐, 조기 합의냐" 삼성의 딜레마
SK하이닉스 학습효과?… "천문학적 배상금이냐, 조기 합의냐" 삼성의 딜레마
이미지 확대보기디지타임스는 5일(현지시간), ITC가 관세법 337조 위반 혐의로 이들 기업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고 보도했다.
ITC가 근거로 든 관세법 337조(Section 337)는 수입 제품의 불공정 무역 행위, 특히 특허권 침해를 다루는 강력한 제재 수단이다.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미국 내 '수입 배제(수입 금지)' 명령이 내려질 수 있어, 해당 기업의 대미 수출길이 막히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악연의 고리, 협력자에서 적으로 돌아선 넷리스트
이번 분쟁의 중심에 선 넷리스트는 LG반도체 출신인 홍춘기 대표가 2000년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설립한 회사다. 삼성전자와 넷리스트는 2015년 메모리 기술 관련 두 기업이 서로의 특허를 일정 조건 하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교차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며 협력 관계를 유지했으나, 2020년 계약이 종료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넷리스트는 재계약 협상 결렬 이후 2021년부터 삼성전자가 자사의 메모리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며 잇달아 소송을 제기해왔다. 넷리스트는 지난해 9월 30일 ITC에 정식으로 소장을 제출했고,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추가 증거 자료를 제출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넷리스트가 문제 삼은 핵심 제품은 인공지능(AI) 가속기에 필수적인 HBM과 최신 서버용 메모리인 DDR5다. 넷리스트 측은 삼성전자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해당 제품들에 대해 ITC가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하는 '제한적 수입 배제 명령(Limited Exclusion Order)'과 미국 내에서 이미 유통 중인 제품에 대해 판매·마케팅·재고 유통을 중단하라고 명령하는 '중지 명령(Cease and Desist Orders)'을 내려달라고 ITC에 요청했다.
구글을 볼모로 삼은 '치밀한 셈법'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에 구글이 포함된 점을 주목한다. 넷리스트가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삼성의 주요 고객사인 구글을 함께 제소한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고도의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구글에 AI 가속기인 텐서처리장치(TPU) 생산에 필요한 HBM을 공급한다. 만약 ITC가 넷리스트의 손을 들어줘 삼성전자 메모리의 미국 수입을 금지한다면, 구글은 핵심 부품 수급에 차질을 빚게 된다. 즉, 넷리스트는 완제품 제조사인 구글을 타격해 부품 공급사인 삼성전자를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ITC 조사는 법원 소송보다 절차가 빠르고 강력하다. ITC는 조만간 담당 행정판사를 배정하고 조사를 시작하며, 조사 개시 후 45일 이내에 조사 완료 목표 시점(Target Date)을 설정한다.
최종적으로 침해 판정이 내려지면 해당 제품은 즉시 미국 내 수입과 판매가 금지된다. 이 결정은 대통령(또는 미국 무역대표부 USTR)이 60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최종 확정된다.
삼성전자 측은 "ITC의 조사 개시 결정을 인지하고 있으며, 절차에 따라 성실히 임하고 적극적으로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넷리스트는 과거에도 SK하이닉스와의 분쟁에서 합의를 끌어낸 경험이 있다"며 "이번 조사 역시 실제 수입 금지 조치까지 가기보다는 거액의 로열티 합의를 종용하기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미지 확대보기넷리스트의 '승리 방정식'... SK하이닉스 합의 사례로 본 삼성의 선택지
넷리스트가 삼성전자를 압박하는 방식은 2021년 SK하이닉스 사례와 판박이다. 삼성전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참고 자료다.
넷리스트는 2016년부터 5년간 SK하이닉스와 치열한 특허 공방을 벌였다. 양사는 2021년 4월, SK하이닉스가 넷리스트에 로열티 4000만 달러(약 570억 원)를 지급하고, 6억 달러(약 8680억 원) 규모의 제품 공급 계약을 맺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SK하이닉스는 이를 통해 미국 내 사업 불확실성을 해소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은 훨씬 엄중하다. 이미 2023년 4월 텍사스 동부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삼성전자에 3억 300만 달러(약 4380억 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이는 SK하이닉스 합의금의 7배가 넘는 액수다. 여기에 더해 이번 ITC 조사는 삼성의 미래 먹거리인 'HBM 공급망'을 정조준했다.
전문가들은 "AI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에서 공급망 리스크는 삼성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가 천문학적인 배상금 리스크를 안고 법리 다툼을 이어갈지, 아니면 SK하이닉스처럼 실리를 택해 조기 합의에 나설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