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장기전으로의 전쟁 설계, 미국이 개전 7일 내 탄약이 고갈날 것이라는 미 방산 AI 기업 CEO의 경고가 드러낸 새로운 억지의 조건과 인도태평양 질서의 재편, 그리고 이에 대비한 한국의 대전략 방향
이미지 확대보기전쟁을 바라보는 시간 개념이 바뀌고 있다
도허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중국은 미국의 이 같은 취약성을 활용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 장기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중국은 매우 장기적인 분쟁을 염두에 두고 계획하고 있으며, 미국의 비축 물자를 고갈시키기 위해 싸움을 길게 끌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이 문제에서 경제적 요소를 결코 놓치지 않고 있다."
미국 방산 부문의 인공지능 기업 최고경영자가 던진 이 같은 경고는 단순한 무기 재고 부족을 넘어 전쟁을 바라보는 두 강대국의 전략적 시간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충돌이 발생할 경우 빠른 승부보다 장기 소모를 통해 상대의 산업 능력과 정치적 인내를 시험하는 전쟁을 상정하고 있으며 미국은 그에 비해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인식이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군사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질서 전체의 작동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무엇보다도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개별 무기 체계의 성능이나 정밀 타격 능력에서 생산 능력과 공급망의 지속성 그리고 국가 전체의 산업 동원력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변화가 가설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준 사례다.
중국이 준비하는 전쟁의 성격
중국이 구상하는 전쟁은 단기적 결전이 아니다. 중국의 군사 전략은 오랫동안 장기 소모전과 전체 국가 역량의 동원을 핵심 개념으로 삼아왔다. 이는 마오쩌둥 시기의 인민전쟁 개념에서 출발해 현대 산업 국가의 조건에 맞게 재해석된 전략이다. 중국 지도부는 전쟁을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산업 사회 전체가 감내해야 할 총체적 과정으로 인식한다.
중국은 대규모 제조 능력과 상대적으로 낮은 단가의 무기 생산 구조를 통해 장기간의 소모를 견딜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왔다. 여기에 공급망 통제와 희토류 반도체 핵심 소재 같은 비군사적 수단까지 결합시키며 전쟁과 경제를 분리하지 않는 전략을 구사한다. 중국이 장기전을 선호하는 이유는 군사적 열세를 보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를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미국이 직면한 구조적 취약성
미국 방산 산업은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생산 라인을 축소하고 해외 공급망에 의존해왔다. 이는 평시에는 합리적 선택이었지만 전시에는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한다. 무기 재고를 빠르게 보충하지 못하는 구조는 전쟁 지속 능력을 근본적으로 제한한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일부 핵심 무기가 며칠 내 고갈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교훈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이 다시 소모전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정밀 무기와 정보 우위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점도 명확해졌다. 포탄 미사일 드론 같은 기본적 전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어느 쪽도 결정적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
이 전쟁은 산업 능력과 동맹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다.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가 누가 더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보급할 수 있는가가 전장의 성패를 좌우했다. 이 교훈은 미중 경쟁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미국 대전략의 방향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전략은 표면적으로는 중국 견제를 강화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위험 감소(risk reduction)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모든 영역에서 중국과 정면 충돌하기보다 미국이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경쟁의 강도를 조절하려는 접근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전략이 동맹국들에게는 중국에 의한 위협 현실화 시 확장억지의 불확실성과 동의어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자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위험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확장 억지의 신뢰성이 약화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핵을 보유한 중국과 북한 그리고 러시아가 동시에 존재하는 동아시아에서 이 문제는 더욱 민감하게 작용한다.
인도태평양 질서의 재편과 억지의 재정의
인도태평양 질서는 군사 동맹 중심에서 산업 기술 공급망 중심의 억지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억지는 더 이상 군사력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생산 능력 기술 자립 에너지와 자원의 안정성이 억지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맹의 성격도 바꾼다. 공동 훈련이나 군사 협력뿐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와 방산 부품 같은 전략 산업에서의 협력이 억지의 실질적 기반이 된다. 동맹은 이제 전쟁 시 함께 싸우는 약속이 아니라 평시부터 함께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 된다.
한국이 직면한 전략적 선택
한국은 이같은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중국과 북한, 러시아라는 핵 보유 국가들과 일본이라는 잠재적 핵 능력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 미국의 확장 억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략은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다. 미국이 위험 감소 전략으로 이동할 경우 위기 상황에서 확장 억지가 자동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은 현실적 고려 대상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은 동맹 강화를 전제로 하되 자체 억지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군비 증강이 아니라 핵 억지 선택지까지 포함한 종합 대전략의 문제다. 자체 핵무장은 동맹을 대체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동맹의 신뢰를 바탕으로 실현함으로써 중-북-러 3국의 핵 위협을 막을 수 있는 자체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의 대중 위험 감소 전략도 뒷받침할 수 있다.
억지와 산업 전략의 결합
한국의 억지 전략은 산업 전략과 분리될 수 없다. 방산 반도체 에너지 원자력 같은 분야에서의 자립과 경쟁력은 군사 억지의 기반이 된다. 전쟁이 장기 소모전으로 전환되는 시대에는 생산 능력을 갖춘 국가만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단기적 위기 관리가 아니라 장기적 생존 전략이다. 이는 군사, 외교, 산업, 기술을 통합한 국가 대전략으로만 가능하다.
새로운 전쟁의 시대에 필요한 국가 전략
미중 경쟁은 단기간에 끝날 충돌이 아니라 장기 소모전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중국은 이를 준비하고 있으며 미국은 그에 대한 구조적 대응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 이 전환기의 불확실성은 동맹국들에게 새로운 부담과 선택을 요구한다.
한국은 미국의 위험 감소 전략 속에서 확장 억지의 불확실성을 직시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 북한, 러시아 3국의 핵 위협과 핵무기 개발 역량을 보유한 일본의 잠재적 위협 가능성까지 고려할 때 자체 핵무장을 중심으로 한 억지 대전략을 진지하게 설계해야 한다. 이는 동맹을 약화시키는 선택이 아니라 동맹과 역내 협력을 통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전쟁의 성격이 바뀌면 국가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장기 소모전의 시대에 살아남는 국가는 가장 강한 국가가 아니라 가장 오래 준비한 국가라는 것이 전략의 역사가 입증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스테이츠맨들은 각 분야 전략가들과 함께 군사, 외교, 산업, 기술을 통합한 국가 대전략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 생존 전략 수립에 서둘러 착수해야 한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