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 주가 올 들어 218% 폭등... AI발(發) '슈퍼사이클' 진입 신호탄
HBM이 일반 D램 라인 '포식', 스마트폰·PC 칩 품귀 현실화... 삼성·SK에 닥친 '기회와 위기'
HBM이 일반 D램 라인 '포식', 스마트폰·PC 칩 품귀 현실화... 삼성·SK에 닥친 '기회와 위기'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지난 19일(현지시각)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를 인용해 "마이크론의 성공은 새로운 칩 부족 사태를 거의 확실하게 예고한다"고 보도했다.
마이크론 매출 57% 급증... '적자 늪' 탈출해 AI 랠리 주도
마이크론이 발표한 실적은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혔음을 보여준다. 지난 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 급증했다. 2023 회계연도 2분기 당시 매출이 반토막 나며 고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18% 치솟았다.
수익성 지표인 총이익률 개선세는 더욱 가파르다. 마이크론은 이번 분기 총이익률 56%를 기록한 데 이어, 다음 분기에는 6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AI 칩 제왕인 엔비디아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고정비용 비중이 높은 메모리 산업 특성상 매출 증가는 곧장 막대한 이익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실적 폭발의 배경에는 AI 투자 붐이 자리 잡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서버 랙인 'DGX GB300'은 20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17TB의 일반 D램을 탑재한다. 엄청난 양의 메모리가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셈이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 세계 서버 시장규모는 1120억 달러(약 165조 원)로 지난해보다 61% 성장했다.
HBM의 역설... "HBM 1개 만들면 일반 D램 3개 사라져"
문제는 AI용 반도체인 HBM 생산이 늘어날수록 스마트폰이나 PC에 들어가는 일반 D램 생산 능력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를 '생산능력 잠식 효과'라고 부른다.
반도체 업계는 HBM 1기가바이트(GB)를 생산할 때마다 일반 D램 3GB를 생산할 수 있는 웨이퍼 공간(CaPa)을 잃는 것으로 분석한다. 차세대 HBM으로 갈수록 공정이 복잡해져 이 비율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높은 HBM에 집중하느라 일반 제품을 만들 여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2026 회계연도 HBM 생산 물량을 이미 모두 팔았고(Sold-out), 2027년 물량도 빠르게 채우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상황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론은 기업용 공급에 집중하고자 소비자용 메모리 브랜드인 '크루셜(Crucial)' 사업부를 폐쇄하는 강수까지 뒀다. 이는 일반 소비자가 시장에서 메모리를 구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여기에 '오픈AI'라는 거대 변수가 등장했다. 오픈AI는 5000억 달러(약 740조 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계약을 맺고 전 세계 메모리 생산 능력의 3분의 1 이상을 선점해 버렸다.
스마트폰 업계 '비상'... 2026년 가격 40% 더 뛴다
불똥은 스마트폰과 PC 등 완제품 시장으로 튀었다.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든 건 엔비디아다. 엔비디아가 서버 전력 비용을 줄이려 서버에 저전력 D램(LPDDR)을 채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LPDDR은 원래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이다. 이제 스마트폰 제조사는 엔비디아와 부품 확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 4분기 메모리 가격이 앞선 분기보다 50% 올랐으며, 2026년 상반기에는 40%가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양 왕 카운터포인트 수석 분석가는 "시장 지배력이 있는 애플과 삼성전자는 부품 품질을 낮춰서라도 버티겠지만, 마진이 박한 중국의 저가 안드로이드폰 제조사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2026년에는 반도체 공급 부족 탓에 스마트폰 출하량이 줄어들고 소매 가격은 오를 가능성이 크다. 2020~2022년 기업 실적 발표에서 2800회 넘게 언급됐던 '공급망 이슈'라는 단어가 내년에 다시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빈집' 노리는 중국... CXMT, 구형 칩 시장 맹추격
한편, 글로벌 메모리 '빅3(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가 수익성 높은 HBM과 최신 DDR5 공정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은 공급이 줄어든 구형 범용 칩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미국의 대중 제재로 첨단 공정 진입이 막힌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박리다매' 전략으로 생존 공간을 확보하고 나선 것이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의 D램 생산능력 점유율은 공격적인 설비 증설에 힘입어 내년 10% 중반대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DDR4와 LPDDR4X 등 구형 제품군에서는 이미 가격 결정권에 영향을 미칠 만큼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메모리 기업들이 범용 시장의 공급 과잉을 유도해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 기업에 '양날의 검'이다. 고부가가치 시장 집중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저가 시장 주도권을 중국에 내줄 경우 장기적으로는 중국 기업들이 확보한 자금으로 기술격차를 좁혀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메모리 산업의 역사는 명확하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고, 산이 높으면 다시 깊은 골이 찾아온다. 2026년 다가올 공급 부족 사태는 메모리 제조사에는 축복이지만, 이를 구매해야 하는 기업과 소비자에게는 2021년 차량용 반도체 대란을 넘어서는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