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지연·비용 급증에 ‘컨스텔레이션급’ 사업 축소… 美 해군성 “동맹 산업 역량이 시간 벌어줄 것”
中과 건조 능력 230배 격차… 선체·모듈 한국서 제작해 미국서 조립하는 ‘분업 모델’ 부상
中과 건조 능력 230배 격차… 선체·모듈 한국서 제작해 미국서 조립하는 ‘분업 모델’ 부상
이미지 확대보기미 군사 전문지 아미레커그니션(Army Recognition)과 아시아타임스(Asia Times)는 26일(현지시각) 미 해군이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 4척의 건조 계약을 취소했으며, 대릴 코들(Daryl Caudle) 미 해군 함대전력사령관(대장)이 최근 한국의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현장을 찾아 구체적인 건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속도가 생존’…미 해군, 설계 결함과 비용 증가에 호위함 사업 칼질
미 국방부는 최근 핀칸티에리 마리네트 마린(Fincantieri Marinette Marine) 조선소와 합의해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 4척의 건조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계획했던 6척 가운데 선도함인 ‘컨스텔레이션함(FFG-62)’과 2번함 ‘콩그레스함(FFG-63)’만 남기고 나머지 물량을 백지화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이탈리아의 ‘FREMM’급 호위함을 미국 기준으로 설계 변경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 회계감사원(GAO) 보고서에 따르면 340건이 넘는 설계 도면이 확정되지 않은 채 건조를 시작해 공정 지연이 잇따랐고, 설계 미비로 선체 무게가 10% 이상 늘어나는 등 성능 저하 우려까지 제기됐다.
이 때문에 1번함 인도는 당초 2026년에서 2029년으로 3년이나 미뤄졌고, 비용은 15억 달러(약 2조2000억 원)나 불어났다. 미 국방부 관계자들은 “속도가 곧 생존”이라며 확보한 예산을 무인수상정(USV)이나 중형 상륙함(LSM) 등 즉시 전력화가 가능한 자산으로 돌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들 제독, 울산·거제 찾아 “동맹국 조선소가 시간 벌어줄 것”
미국 내 조선업의 붕괴가 현실화하자 미 해군은 동맹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미레커그니션에 따르면 지난 11월 코들 제독은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한국과 일본을 택했다. 그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방문해 건조 역량을 직접 확인하고, 미 해군의 부족한 함정 건조 능력을 동맹국이 보완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코들 제독은 하와이와 도쿄에서 가진 연설에서 “동맹국의 산업 지원이 미국에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숙련 노동자 부족과 낙후된 시설, 태평양 지역의 긴장 고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조선소의 압도적인 생산 능력과 효율성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제 함정 공급을 늘리기 위한 실무적 접근으로 풀이된다.
中 조선 능력, 미국의 230배…‘기울어진 운동장’의 공포
미 해군이 이토록 다급하게 움직이는 배경에는 중국의 무서운 해군력 팽창이 있다. 아시아타임스는 2024년 기준 중국 해군이 370척의 함정을 보유해, 수적으로 이미 미 해군(300척 미만)을 추월했다고 분석했다.
더 큰 위협은 건조 능력 격차다. 중국의 조선 건조 능력은 미국의 약 230배에 달한다. 중국 국영 조선소 한 곳이 1년에 찍어내는 선박 톤수가 미국 전체 조선소가 수십 년간 만드는 양보다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미국은 냉전 이후 상업용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해군만이 유일한 발주처로 남았고, 공급망 붕괴와 인력난이 겹치며 구조적 위기에 빠졌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버지니아급 및 컬럼비아급 잠수함 등 핵심 전력 사업이 모두 일정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체는 한국, 무장은 미국’…새로운 분업 모델 부상
이에 따라 단계적 협력 방안이 힘을 얻고 있다.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정비(MRO) 물량을 동맹국 시설로 이전하고 ▲기뢰 대항작전 등을 공동 수행하며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규모의 선체나 대형 모듈을 한국이나 일본에서 제작한 뒤 미국으로 가져와 무장과 레이더를 장착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HD현대와 미국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스(HII)는 미 해군 보조함 공동 건조를 위한 협약을 체결하는 등 이러한 구상은 이미 상업적 현실로 옮겨가는 단계다.
한국 조선업계의 기회와 과제
이번 미국의 정책 변화는 ‘K-조선’에 거대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F-35 전투기 국제 공동 생산 방식처럼, 함정 건조에서도 동맹국 간 분업이 이뤄진다면 한국 조선소는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하고 방산 수출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미국 내에서는 ‘자국 우선주의’와 ‘미국산 구매법(Buy American Act)’을 들어 군함 건조의 해외 아웃소싱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주권과 보안 문제도 민감한 쟁점이다.
아시아타임스는 한국이 미 해군 건조에 깊숙이 관여할 경우 중국의 경제적 보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안보·산업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중국의 견제와 국내 숙련 인력 유출 우려 등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코들 제독의 이번 아시아 순방이 한미 조선 동맹의 실질적 신호탄이 될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