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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AI·HBM發 나비효과…'DDR5·PMIC' 설계 변경, '초소형 부품' 전쟁 깨웠다

DDR4, HBM에 밀려 가격 역전…삼성·SK하이닉스 '전략적 감산'에 PC 업계 '비명'
모듈에 PMIC 첫 탑재.…삼성전기·무라타, '초소형 인덕터·MLCC' 신시장 정조준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인공지능(AI) 붐이 촉발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D램 시장 전체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HBM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략적 선택은 '구세대' DDR4의 공급 부족과 이례적인 가격 역전 현상을 낳았다. 이 '강제된' 세대교체는 PC 제조사들의 DDR5 전환을 가속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DDR5 모듈의 근본적인 아키텍처 변화가 '수동 부품'이라는 새로운 거대 시장을 열어젖히고 있다고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가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DDR5 전환의 핵심은 단순히 속도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전력 관리 IC(PMIC)가 마더보드에서 메모리 모듈로 직접 이동하는 설계 혁신이 동반된다. 이 작은 변화가 모듈당 수동 부품의 수량과 가치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삼성전기를 비롯한 글로벌 부품사들의 '조용한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HBM에 밀린 'DDR4 찬밥'…이례적 가격 역전의 내막


현재 메모리 시장은 '가격 역전'이라는 기현상을 겪고 있다. 2025년 하반기 이후, 구세대인 DDR4의 현물 가격이 차세대 제품인 DDR5의 가격을 추월하는 이례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최종 시장의 수요가 강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공급망의 제약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배경에는 AI발 'HBM 골드러시'가 자리한다. 엔비디아 GPU 등에 탑재되는 HBM은 일반 D램 대비 수익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HBM 시장의 주도권을 쥔 SK하이닉스와 이를 추격하는 삼성전자는 막대한 생산 설비를 HBM과 같은 고부가가치 프리미엄 제품으로 전환하고 있다.

두 거대 메모리 제조사의 전략적 선택으로 DDR4 생산 라인은 급격히 축소됐다. 수명 주기가 긴 산업용 PC(IPC)나 서버, 특정 가전제품 등 여전히 DDR4가 필수적인 다운스트림 ODM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가에 희소해진 DDR4 재고 확보에 나서고 있다. 현재의 '패닉 바잉'은 이러한 공급자 중심의 구조 재편이 낳은 결과물이다.

공급 불확실성과 치솟는 DDR4 가격에 부담을 느낀 PC 및 노트북 고객사들은 2026년을 기점으로 DDR4 시스템에서 벗어나 DDR5로의 전환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업계는 2026년을 DDR4와 DDR5의 수요가 교차하는 '골든 크로스'의 원년으로 전망하며, 이는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차세대 표준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PMIC 온보드'…DDR5, 단순 세대교체 아닌 '전력 아키텍처 혁명'


DDR5로의 전환이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전력 관리 아키텍처의 근본적인 변화다. 기존 DDR4까지는 전력 관리를 마더보드가 담당했지만, DDR5부터는 전력 관리 IC(PMIC)가 메모리 모듈(DIMM)에 직접 탑재된다.
산업 엔지니어들은 이 변화를 DDR4에서 DDR5로의 이행에 있어 가장 중대한 기술적 변혁으로 꼽는다. 모듈이 스스로 전력 효율을 관리하게 되면서, PMIC를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부품 생태계가 모듈 위에 구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혁신의 최대 수혜자는 수동 부품 업계다. DDR5 모듈은 기존 DDR4와 마찬가지로 적층 세라믹 커패시터(MLCC)를 필요로 하면서도, PMIC 구동을 위해 새로운 부품을 요구한다. 바로 '인덕터'다. DDR5 모듈 1개당 통상 3~4개의 작고 전력 소모가 적은 인덕터가 신규로 탑재된다.

이는 수동 부품 업계에 막대한 신규 수요가 열리는 순간이다. 특히 메모리 모듈이라는 협소한 공간에 장착되어야 하므로, 일반 부품이 아닌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초소형·고성능' 부품이 필수적이다.

이 새로운 전장에는 글로벌 강자들이 정조준하고 있다. 대만의 칠리신, 인파크 등도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시장의 눈은 절대 강자인 일본의 무라타, TDK, 그리고 한국의 삼성전기로 향한다. 삼성전기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초소형·고용량 MLCC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DDR5의 PMIC 탑재는 삼성전기에게 기존 MLCC 시장의 지배력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고성능 인덕터 시장까지 확대할 절호의 기회다. K-반도체 생태계가 메모리를 넘어 핵심 부품으로까지 확장되는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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