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칩 기근'에 화웨이 우선 배급…舊칩 '묶어쓰기' 고육책
엔비디아 "나노초 추격" 반발…워싱턴 '제재 실효성' 격론
엔비디아 "나노초 추격" 반발…워싱턴 '제재 실효성' 격론
이미지 확대보기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각) 이 칩들이 자카르타의 사립학교와 고급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데이터 센터로 유입된 과정을 추적 보도했다. 이 거래는 미국의 무역 제재 명단(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의 자회사가 주선했으며, 여러 국가를 거친 연쇄 거래를 통해 성사됐다.
WSJ에 따르면, 중국 AI 기업이 엔비디아 칩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4단계 접근 구조'가 확인됐다. 이 방식은 칩을 중국 본토로 직접 반입하지 않고도 원격으로 접근·활용하는 '해외 임대(cloud rental)'다. 구체적인 경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엔비디아가 '회색지대'의 미국 파트너사에 칩을 판매했다. 엔비디아는 실리콘밸리 서버 제작사 '아이브레스(Aivres)'에 칩을 정상 판매했다. 아이브레스 모회사의 지분 3분의 1은 중국 '인스퍼(Inspur)' 그룹이 보유하고 있다. 인스퍼는 2023년 미 상무부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미국 내 자회사인 아이브레스는 제재 대상이 아니었다.
둘째, 이 서버가 미국의 직접 통제권 밖인 인도네시아로 이동했다. 아이브레스는 2024년 중반 인도네시아 통신사 '인도삿 우레두 허치슨'과 계약을 맺고 총 1억 달러(약 1400억 원) 규모의 GPU 서버 랙 32대(GB200 블랙웰 칩 2300개 탑재)를 판매했다. 인도삿은 카타르 및 홍콩 자본의 합작사로,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직접적인 수출 통제 '우방국 그룹'에 포함되지 않아 따로 허가 없이 칩 수입이 가능했다.
셋째, 인도네시아 기업이 최종 고객인 중국 스타트업과 계약했다. 인도삿은 아이브레스의 중개로 상하이 AI 스타트업 'INF 테크'를 최종 고객으로 확보했다. MIT 박사 출신으로 알리바바 초기 AI 과학자였던 치 위안이 설립한 INF 테크는 금융, 헬스케어 등 비(非)군사용 AI 모델 학습을 목표로 했으며, 상하이 푸단대학교 연구진이 협상에 자문으로 참여했다.
넷째, 중국 기업은 칩에 물리적 접근 없이 'GPU 렌탈' 방식으로 사용한다. INF 테크는 클라우드를 통해 GPU 연산 자원을 대여받으며, 2025년 10월 현재 서버 설치를 마쳐 AI 금융 분석 및 신약 설계 연구 등에 투입된다.
'칩 기근' 中 내부, 정부 개입·밀수 '사투'
이러한 '클라우드 임대' 등 필사적인 우회 시도는 중국 내부의 절박한 반도체 수급 상황과 맞닿아 있다.
WSJ는 앞서 지난 11일 미국의 칩 규제가 중국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첨단 반도체 부족 현상이 극심해지자 중국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자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의 생산 물량 배분에 개입하고 있다. SMIC 기술로 AI 칩을 만드는 화웨이의 필요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라는 지시다.
다른 중국 기술 기업들은 제한된 국내 생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일부 연구소는 고성능 엔비디아 칩을 밀수하고 있다.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칩 부족 탓에 올해 최신 모델 출시를 연기해야 했다.
뾰족한 수가 없는 기업들은 상하이의 '메타X(MetaX)'처럼 구형 칩 두 개 이상을 함께 묶어 성능을 보완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 방식은 전력 소모가 극심해 일부 지방 정부가 데이터 센터의 전기 요금을 보조해주는 실정이다.
WSJ가 검토한 계약서에 따르면, 냉장고 크기의 '블랙웰 랙' 최소 16개를 작은 부품으로 분해해 중국으로 배송한 뒤 현지에서 재조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물량은 대규모 AI 모델을 훈련하기엔 부족하지만, 연구 및 애플리케이션 개발에는 유용한 수준이다.
엔비디아 대변인은 "중국 국내 산업은 원치 않는 용도나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고도 수백만 개가 남을 만큼 충분한 국내산 AI 칩과 서버를 보유하고 있다"며 밀수 규모가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의 자체 칩 생산은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미국이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판매를 금지하면서, 중국은 비효율적인 구형 제조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는 지난 9월 보고서에서 SMIC의 기술로 화웨이의 첨단 910C 칩을 생산할*경우, 100개의 실리콘 중 95개가 불량품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제재 효과' 두고…엔비디아 vs 美정부 '격론'
인도네시아 사례와 같은 '규제 회피'가 이어지고 중국 내부의 '칩 몸부림'이 계속되자, 워싱턴 정가에서는 제재 실효성을 두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제재 강화론자들은 현재의 통제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수출 통제를 이끌었던 테아 켄들러는 "이런 구조를 정부가 사전 통제하려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비동맹국에도 라이선스 심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민간용이라도 중국의 '민군 융합(民軍融合)' 전략에 따라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경이 결정적인 '규제 공백'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동남아 등 제3국을 통한 중개 거래를 규제하는 강화 규정을 발표했으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시행하지 않기로 하면서 사실상 회색지대 수출 경로가 열렸다.
반면,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대론자들은 이러한 통제가 미국의 혁신에 역효과를 내고 화웨이 같은 중국 경쟁사에게만 시장을 내줄 것이라고 반박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중국은 AI에서 미국을 나노초(nanoseconds)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며 "엔비디아가 (수출용) 블랙웰 칩을 중국에 판매해 화웨이와 경쟁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 대변인 역시 "미국의 AI 리더십을 확보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비전을 지지한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통제는 납세자들에게 수백억 달러의 비용을 부담시키고 혁신을 저해했으며 외국 경쟁자들에게 입지를 내줬다"고 비판했다.
데이터 제공업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올해 1~3분기 로비 자금으로 약 350만 달러(약 51억 원)를 지출했다. 이 금액은 2024년 전체 지출액인 64만 달러(약 9억 3800만 원)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러한 논쟁의 핵심에는 중국의 실제 칩 생산 능력에 대한 엇갈린 통계가 자리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6월 의회에서 "화웨이가 연간 약 20만 개의 AI 칩을 생산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연구업체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는 화웨이가 올해 '어센드' 프로세서를 80만 5000개 생산할 것으로 추산했다. 화웨이 측근들은 회사가 2026년까지 총생산 능력을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최근 "엔비디아의 최고 칩보다 몇 세대 뒤처진 제품에 한해 1~2년 내 일부 수출을 허용할 수 있다"고 신호를 보냈다.
이번 사태는 "법은 어기지 않았지만, 시스템은 뚫렸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미·중 간 규제 공백의 교차지대로 작동한다고 보고, 이 현상을 "AI 시대의 새로운 기술 회색경제(grey-tech economy)"라고 규정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