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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중국, 국영 데이터센터에 '엔비디아 금지령'…AI칩 자립 선언

2022년 점유율 95% 엔비디아 '퇴출'…점유율 0% '충격'
화웨이 등 자국산엔 '전기료 50% 감면' 파격 지원…'AI 굴기' 가속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중국이 기술 자립을 목표로 외산 인공지능(AI) 반도체 퇴출을 본격화한다. 6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 디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수백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모든 신규 국영 데이터센터 사업에 자국산 AI 칩 사용을 의무화하는 지침을 내렸다.
이번 규제에 따라 당장 완공률이 30% 미만인 데이터센터는 외산 칩을 전면 제거하거나 설치를 중단해야 한다. 이는 엔비디아, AMD, 인텔 등 미국 기업들을 정조준한 조치다. 공정률이 이보다 높은 프로젝트는 사안별로 개별 평가를 받게 된다.

새로운 규정은 엔비디아가 미국의 수출 통제 하에서 중국에 판매할 수 있는 최신 AI 칩인 'H20'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B200' 및 'H200'과 같은 고성능 상위 모델 역시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이 칩들은 중국으로의 직접적인 선적은 금지됐으나, 그간 비공식적인 경로(그레이 마켓)를 통해 시장에 유통되어 왔다.

이번 조치의 여파로 중국 북서부의 한 민간 기술 기업이 주도하던 프로젝트를 포함, 여러 데이터센터 사업이 이미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美 '수출 통제' 맞대응…'쌍순환 전략'으로 AI 자립 박차


이번 지침은 기술 자립과 외부 위험 노출 최소화를 골자로 하는 중국 '14차 5개년 계획'의 '쌍순환(이중 순환)'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는 중국 정부가 데이터센터와 같은 핵심 인프라를 전적으로 자국 기술에 의존하도록 만들기를 원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첨단 반도체가 중국의 군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미국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다. 중국 정부 역시 안보 문제를 내세워 자국 주요 기술 기업들에 엔비디아의 최신 칩 구매를 자제하도록 권고해왔다.

중국은 올해 자국산 AI 칩으로만 구동되는 새로운 데이터센터를 공개하며 독자적인 컴퓨팅 생태계 구축 의지를 과시한 바 있다. 2023년 미국 마이크론 제품의 핵심 인프라 사용을 금지한 조치도 같은 맥락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 결정이 결국 마이크론이 올해 중국 서버 칩 시장에서 철수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직격탄 맞은 엔비디아…"시장 점유율 95%

외국 공급업체에 미칠 파장은 심각하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이번 금지 조치가 "전략적 인프라에서 외산 기술을 몰아내기 위한 중국 정부의 가장 강력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또한 화웨이, 캠브리콘 테크놀로지스, 메타X, 무어 스레즈와 같은 자국 유망 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적 목표도 담겨있다.

2022년 중국 AI 가속기 시장의 약 95%를 점유했던 엔비디아는 직격탄을 맞았다. 회사 자료에 따르면 현재 엔비디아의 중국 내 점유율은 0%로 급락했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에 "중국 AI 산업이 미국 하드웨어에 계속 의존하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며 수출 규제 완화를 거듭 촉구해왔다.

제한적인 AI 칩 판매 재개를 위한 협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온 이번 국영 프로젝트 배제 조치로, 엔비디아의 중국 매출은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엔비디아 빈자리, 화웨이가 채운다...'전기료 감면' 당근책까지


이번 지침으로 화웨이의 '어센드' 시리즈, 상장사인 캠브리콘, 그리고 메타X, 무어 스레즈, 엔플레임 같은 신흥 기업들은 확실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게 됐다.

중국 정부는 자국산 AI 칩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에 대해 최대 50%의 전기료 감면 정책을 도입하는 등 지원책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에너지 효율이 낮은 중국산 칩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일부 빅테크 기업들은 오히려 전기료 부담이 증가하는 부작용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국 기업의 제품 성능이 엔비디아의 일부 제품 수준에 근접했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엔비디아의 강력하고 안정적인 '쿠다(CUDA)' 생태계에 익숙한 개발자들이 자국 플랫폼 채택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이 자국산 칩 판매를 촉진하겠지만, 미국과의 AI 컴퓨팅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다는 위험도 상존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오픈AI 등 미국 기업들은 엔비디아의 최신 프로세서로 구동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에 이미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SMIC와 같은 중국 칩 제조사들이 미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 제재로 인해 공급 병목 현상을 겪으며 첨단 칩 대량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도 현실적인 한계로 지적된다.

"AI 시장, 2035년 1.7조 위안"…성장 속 '풀 스택' 독립 추구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AI 산업 자체는 빠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정보통신기술 연구원(CAICT)에 따르면, 2024년 중국 AI 산업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4% 증가한 9000억 위안(약 1260억 달러)을 돌파했다.

중국 내 AI 생태계는 5,300개 이상의 기업(전 세계 AI 기업의 15%)을 아우르며, 2035년에는 시장 규모가 1조 7300억 위안(연평균 15.6% 성장)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차이신은 이번 지침이 헬스케어, 금융, 도시 관리 등 여러 부문에 AI를 통합하는 대규모 'AI+' 이니셔티브를 통해 컴퓨팅 성능과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야망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CAICT 전문가들 역시 '2024 중국 컴퓨팅 파워 지수 보고서'를 인용하며, 자국 AI 하드웨어 역량 강화를 인프라 지속 가능성의 핵심으로 꼽았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과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사안의 민감성을 반영하듯 이번 정책에 대해 공식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무역 대화가 재개되었음에도, 중국은 전략적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자국산 AI 칩 배치를 가속화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2021년 이후 1000억 달러가 넘는 자금 지원 프로그램에서 알 수 있듯, 중국의 최종 목표는 AI 칩 설계부터 소프트웨어 생태계, 데이터 인프라에 이르는 '풀 스택(full-stack)'의 완전한 독립이다. 외부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국의 AI 미래를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가 이번 지침에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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