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의존도 70% 약점 공략...우크라이나식 정보전 중앙아시아 확산
이미지 확대보기워싱턴포스트는 지난 3일(현지시각) 러시아가 군사 침공 대신 은밀한 영향력 공작과 거짓 정보 유포, 불안정화, 군사·정보 탐색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지역이 러시아의 새 표적이 된 배경에는 희토류 같은 주요 광물 자원이 자리잡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올해 4월 중부 카라간다주에서 2000만 톤 이상 희토류 매장지를 발견했다고 밝혔으며, 이는 중국, 브라질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자료를 보면 미국은 희토류 수입의 70%를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어 카자흐스탄의 전략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중앙아시아, 러시아 세력권서 벗어나는 움직임 빨라져
요크타운연구소 세스 크롭시 소장과 조셉 엡스타인 선임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러시아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가 2024년 고위 관료들에게 전달한 기밀 보고서는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지역에서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스마트폰, 전기차, 첨단 무기 제조에 꼭 필요한 희토류의 약 70%를 중국에서 들여온다. 중국이 올해 4월 미중 무역 분쟁 과정에서 희토류 수출을 막자 미국 산업계가 큰 타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중앙아시아는 공급망을 다각화하는 주요 지역으로 떠올랐다. 카자흐스탄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50개 주요 원자재 가운데 21개를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은 또 러시아와 이란을 거치지 않고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무역로의 주요 거점이다. 지난해 6월 한국 정부는 카자흐스탄과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우크라이나 수법 재현...러시아어 지역 불안 부추겨
크롭시 소장과 엡스타인 연구원은 "러시아 공작원들이 카자흐스탄 북부 러시아인 다수 지역에서 불안을 부추기려 했다는 보고가 있다"며 "아르메니아에서는 당국이 친러 기업인을 쿠데타 음모 혐의로 잡아들였고, 러시아 정보기관과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을 받는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정부에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런 수법이 우크라이나에서 쓴 전략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어 쓰는 지역에서 불만을 부추기고,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같은 친러 재벌들에게 돈을 대며, 현지 정교회 분파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우크라이나 언론인 올렉시 플라토노프는 이를 "성직자 옷을 입은 크렘린 요원"이라고 불렀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7600㎞ 국경을 함께 쓰며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많은 러시아인이 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과거 "카자흐스탄은 국가가 없었다"고 말해 카자흐인들의 반발을 샀다. 러시아 언론은 카자흐 정부를 '러시아 혐오'라고 비난하며 크림반도와 돈바스에서 쓴 것과 똑같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라디오 자유유럽-자유방송(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이 공개한 러시아 유출 문서를 보면 러시아는 이런 주장을 무기로 쓰고, 카자흐 엘리트를 포섭하며, 선전을 퍼뜨리는 싱크탱크를 심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 경제 투자로 러시아 견제 나서야
크롭시 소장과 엡스타인 연구원은 "카자흐스탄은 군사력이 우크라이나보다 약하고 7600㎞ 국경이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에는 공격하지 않겠지만 사전 포석을 깔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미국의 대응책으로 "미국 기업들과 일자리가 눈에 보이게 연결된다면 러시아의 개입이 훨씬 위험해질 것"이라며 "워싱턴은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의 희토류와 에너지 독점 거래를 통해 서방의 이해관계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르메니아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불안한 모습이다. 니콜 파시냔 총리는 여론조사에서 17% 지지율에 머물러 있다. 2020년 카라바흐 전쟁 이후 러시아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장악력이 약해지면서 두 나라는 서방으로 기울었고, 올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중재로 평화 협정을 맺었다.
크롭시 소장과 엡스타인 연구원은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 아르메니아 같은 언론이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와 적개심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평화를 반대하는 해외 교포 단체들이 자기도 모르게 이를 따라 하고 있다"며 "미국은 아르메니아 경제, 인프라, 인공지능(AI) 부문에 눈에 보이는 투자를 해 안정이 가져오는 실질 혜택을 선거 전에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구소련 지역 대부분을 모스크바 궤도에서 벗어나게 했으나, 이 기회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크렘린은 총 한 방 쏘지 않고도 이웃 나라들을 흔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미국이 경제, 외교, 기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면 이들 나라가 러시아 압박에 견디도록 도우면서 미국 이익도 지킬 수 있다"며 "모스크바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다"고 덧붙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