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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빅딜] 미국·러시아, 우크라이나 '영구 평화협정'으로 급선회…유럽·우크라이나 소외

트럼프, '임시 휴전' 접고 푸틴 주장 수용…종전 협상 주도권 러시아로
당사자 우크라이나 빠진 '그들만의 합의'…젤렌스키, 외톨이로 워싱턴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월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프-리처드슨 공동기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월 15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프-리처드슨 공동기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래스카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 전쟁 해결 방안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임시 휴전 구상에서 벗어나 '영구 평화 합의'라는 새로운 길을 열면서 국제 정세는 중대한 분수령을 맞았다고 영국 BBC방송이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화려한 의전, 알맹이 없던 3시간


15일 앵커리지 공군기지. 붉은 카펫을 깐 활주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등을 두드리며 환영했고, 두 정상은 활짝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미·러 정상이 미국 땅에서 이처럼 화려한 의전 속에 만난 것은 드문 장면이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회담은 '평화 추구'라는 의제에도 전쟁 종식을 향한 돌파구는 마련하지 못했다.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매우 유용한 회담이었다"며 "우리를 올바른 결정에 더 가깝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 원인' 해결을 강조하며 나토 포기, 군사력 축소, 중립국화 등을 요구했다.

◇ 트럼프의 변심, 푸틴의 미소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에 내놨던 '임시 휴전' 방안을 접고 곧바로 '영구 합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푸틴이 주장해온 바와 같다. 러시아 관영 방송은 이를 두고 "푸틴이 트럼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고 환호했다.

트럼프는 유럽 지도자들과 통화하며 "푸틴이 더 양보할 뜻이 있다"고 전했지만, 그 내용은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CBS는 도네츠크 전역의 러시아 귀속, 러시아어 보호, 정교회 권리 보장 등이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 주인공 빠진 회담, 불안한 워싱턴행


이번 회담의 가장 큰 빈자리는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부재였다. 키이우 시민들은 트럼프가 푸틴을 붉은 카펫으로 맞는 장면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는 월요일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와 회담한다. 앞서 2월 백악관 회담에서 고성이 오갔던 터라 이번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낼지 긴장이 높아진다. 일각에서는 푸틴까지 포함한 3자 회담 가능성도 나온다.

◇ 따돌려진 유럽의 분노와 긴급 회동

유럽 국가들은 이번 회담의 '패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유럽 정치인들에게 알래스카는 '블랙프라이데이'였다"고 비아냥댔다. 또 "이제 유럽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친크렘린 매체들도 "푸틴과 트럼프가 유럽과 아시아의 지정학적 방향을 결정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주요 유럽국 정상들은 16일 긴급 회동을 열고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미국의 독자 행보와 러시아의 강경한 태도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힘을 얻을지는 불투명하다.

◇ 전장의 현실…수미 지역 격전


외교 무대가 요동치는 동안 전선은 여전히 살벌하다. 우크라이나군은 북부 수미 지역에서 최대 2.5km 나아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국경 일대에 '완충지대'를 만들겠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어 긴장 수위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이보 달더 전 미국 나토 대사는 BBC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안전을 보장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안전을 보장할 유일한 방법은 나토 가입이며, 다른 대안은 실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트럼프의 변심이 결국 젤렌스키에게 영토를 내주라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알래스카 회담은 뚜렷한 합의 없이 끝났지만, 세계 질서를 뒤흔들 여진을 남겼다. 푸틴은 '근본 원인 해결'을 내세워 우크라이나 해체를 기정사실로 만들려 하고, 트럼프는 '영구 평화'라는 명분 아래 오랜 동맹을 제쳐둔 채 홀로 외교에 나서고 있다. 젤렌스키의 워싱턴 방문과 유럽의 대응이 앞으로 전쟁과 평화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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