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연속 1위 중국에 맞선 한·미동맹...中 "고위험 도박" 경계

한국은 미국에 4500억 달러(약 627조 원)를 투자·구매하며 관세율을 15%로 낮췄다고 국내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 가운데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양국 전략산업 협력 기반을 굳히기 위해 조선·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에너지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적극적인 미국 시장 진출을 돕는 데 투입된다.
이번 합의 내용 가운데 업계의 눈길을 끈 것은 특히 중국 조선업의 빠른 성장에 맞선 한·미 조선업 협력이다. 관세 협상 내내 한·미 조선 분야 동맹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가 관심사였다. 이번 협상에서 결국 1500억 달러를 조선업 협력 전용 펀드로 운용하기로 했다. 이는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등 한국 조선산업의 미국 조선업 진출을 뒷받침한다.
◇ 세계 챔피언 중국의 조선업 현황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2024년 중국 조선업은 건조량·수주량·수주잔량 3대 기준에서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해 15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했다. 중국의 조선 건조량은 4818만 톤으로 세계 시장의 55.7%를 차지했으며, 수주량은 1억1305만 톤으로 세계 74.1%를 차지했다.
영국 클락슨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선박 수주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71%, 한국은 17%를 기록해 54%의 차이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보다 중국이 11% 늘어난 반면 한국은 3% 줄어든 결과다.
◇ 미국 "조선업 재건" 카드로 한국과 손잡기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월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를 통해 "중국이 거의 30년 동안 해양·물류·조선 분야를 표적 삼아 지배 목표를 대부분 이뤘다"고 발표했다. USTR에 따르면 1999년 5% 미만이던 중국의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이 2023년 50% 이상으로 올랐다.
이에 맞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의 뉴욕 회담에서 '마스가' 사업을 제안했다. 이 사업은 한국 민간 조선사들의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와 정부의 대출·보증 등 금융지원을 포괄하는 수십조 원 규모의 묶음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발표에서 "한·미 조선 협력 펀드가 1500억 달러(약 208조 원)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며, 선박 건조와 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밝혔다.
미국 측은 한국에 △한국 조선업체의 미국 현지 투자 △핵심 기술 이전 △인력 양성 지원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은 한국의 빠른 선박 건조 기술력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 중국 "한국의 대미 종속 초래할 고위험 도박"
중국은 한·미 조선업 협력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최근 논평에서 "이 협력은 근본적으로 한국이 기술 전문성과 재정 투자를 관세 인하와 교환하는 큰 거래"라면서 "불확실한 보상과 장기간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 능력을 갖췄음에도 이를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은 지정학적 판단이 경제 논리를 누른 사례"라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한국 일각에서는 미국 조선업체들과의 협력이 한국 조선사들에 세계 시장 점유율 확대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보지만, 이런 협력이 한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오히려 대미 종속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기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모든 당사자가 경제 무역 관계를 적절히 처리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어떠한 합의나 협상도 제삼자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한·미 조선업 협력이 "한국이 미국에 점점 더 의존하거나 종속되는 불안정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잃고 미국에 종속될 위험이 있는 고위험 도박"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오는 10월부터 중국산 선박의 미국 입항 시 컨테이너당 120달러(약 16만7000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이를 2028년까지 250달러(약 34만8000원)로 올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중국 조선소가 건조한 선박에 대해서는 최대 150만 달러(약 20억8000만 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중국 조선업 제재가 한국 조선업계에 반사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국내 조선사들이 컨테이너선 24척을 수주하는 등 좋은 소식이 벌써 시작됐다. 그러나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세계 공급망 재편이 빨라지면서 앞으로 조선업계의 경쟁 구도 변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