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기종 절반 값·신속 납기 강점… 현지 조립 등 기술이전 조건도 주효
노후 미라주· MiG 대체해 군 현대화 박차... K-방산과 협력도 넓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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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업자 선정에서 스웨덴 그리펜은 미국의 F-16 블록 70, 프랑스의 라팔 F4 등 쟁쟁한 경쟁 기종들을 제쳤다. 가격, 납기, 절충교역(offset) 등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그리펜 E의 대당 가격은 1억1000만~1억2000만 달러(약 1499억~1635억 원) 수준으로, 대당 1억7000만~2억4000만 달러(약 2317억~3271억 원)에 이르는 경쟁 기종보다 훨씬 싸다. 계약 후 첫 인계까지 걸리는 시간도 24개월로, 다른 기종의 60개월보다 월등히 짧아 신속한 전력화가 가능하다. 페루는 공군 창설 기념일인 2026년 7월 23일까지 최소 2대를 먼저 인도받기를 바라고 있다.
◇ 저비용·기술이전 앞세워 미·프랑스 기종 압도
양국 정부는 조만간 최종 계약을 위한 정부 간 협정을 맺을 전망이다. 이를 위해 스웨덴의 폴 욘손 국방장관이 오는 10일 페루를 방문해 페루의 왈테르 아스투디요 차베스 국방장관과 회담을 연다. 이 자리에서 기술 이전, 산업 협력을 포함한 절충교역 조건 등 세부 사항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방문 기간에 브라질 공군 협조로 그리펜 E 전투기 2대의 시범 비행도 예정돼 있어 계약이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사브는 페루 측에 국방 분야뿐 아니라 비국방 분야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절충교역 꾸러미를 제안했다고 알려졌다. 여기에는 페루 현지 조립 가능성도 포함됐다고 한다. 과거 페루 SIMA 조선소와 손잡고 CB90급 고속정 5척을 함께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전투기 사업에서도 현지 산업 협력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 실전경험 부족 우려 속… 육해공 전력 동시 증강
다만 페루 국방계 일각에서는 그리펜의 실전 경험 부족과 브라질 생산라인에 대한 군수 의존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그리펜 E 기종은 고강도 전투 경험이 없고, 일부 기체를 브라질에서 생산할 경우 현지 정치 상황에 따른 군수 의존이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드론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유인 전투기 도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예비역 대령 호르헤 갈리노는 기고문에서 "현대의 억지력은 전통적인 전투기 역량보다는 드론 떼와 네트워크 작전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페루 정부는 국가 안보 전략상 차세대 전투기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국방정책차관인 예비역 장군 세사르 토레스는 "이 항공기들은 즉각적인 전쟁보다는 억지력 역할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그리펜 도입은 페루군의 광범위한 군 현대화 계획의 한 축이다. 페루는 C-27J 스파르탄 수송기, 보잉 737 공중급유기 등을 사들이는 한편, 한국과의 방산 협력도 크게 넓히고 있다. 페루 공군 조병창(SEMAN)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KT-1P 훈련기를 공동 생산한 경험을 바탕으로 KF-21 전투기 부품 생산 참여를 타진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현대로템의 K2 전차, HD현대중공업의 신형 잠수함 도입 계약을 맺는 등 육해공 전반에 걸쳐 전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페루는 이번 도입으로 브라질과 콜롬비아에 이어 남미에서 세 번째 그리펜 운용국이 된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전력 보강을 넘어, 자국 산업 육성과 전략적 자율성 확보라는 장기 목표를 담은 대형 방산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