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위안화·멕시코 페소화 등으로 결제 수단 변경 움직임 확산

16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은행업계를 인용해 국제 거래에서 유로화, 중국 위안화, 멕시코 페소 및 캐나다 달러 등으로 결제 수단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은행 US뱅코프의 파울라 커밍스 통화 세일즈 총괄은 “과거에는 공급업체 입장에서 달러화가 신성불가침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고객들이 결제통화를 바꾸는 데 주저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해외 공급업체들이 ‘우리 통화로 결제해 달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제 통화 변경 움직임은 최근 미국 달러화의 변동성 확대 및 약세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블룸버그 통화지수에 따르면 달러화는 올해 들어 주요 통화 바스켓 대비 약 8% 하락했다. 달러화는 지난해 4분기에만 해도 주요 통화 바스켓 대비 7% 급등했지만, 이후 급락세로 전환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달러화가 지난주 이후 일시적으로 반등했지만, 계속해서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자 기업들은 이를 위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기업들은 수익성 예측과 가격 책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블룸버그는 “달러화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국제 무역 현장에서 과거보다 결제 통화 다변화 움직임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매체에 따르면 실제 미국 기업들이 국제 거래에서 달러 대신 외국 통화로 결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수출업체로부터 할인 혜택도 누릴 수 있어 전략적으로 결제 통화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US뱅코프는 과거에는 무역 결제에 있어 달러화가 기본 통화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기업들이 점점 더 다양한 통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결제 전문기업 코페이의 칼 샤모타 수석 시장 전략가는 “이러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수치화하기는 어렵지만, 동아시아에서 중남미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수출업체들이 계약 통화를 유로, 위안화 또는 자국 통화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존의 ‘달러 중심 무역 질서’에도 점진적인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9년까지 미주 지역에서 수출 송장의 거의 전부는 달러화로 청구됐다. 또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해당 기간 달러화로 수출 송장이 작성된 비중은 평균 75%에 달했다.
씨티그룹은 무역 송장 부문이 달러의 지배력 약화를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달러화 중심 결제에서 본격적인 이탈이 이뤄지려면 중남미와 아시아 전역에서 더 견고한 ‘무역 블록’이 추가로 형성돼야 할 것”이라며 “미국의 무역 전쟁이 이러한 과정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US뱅코프의 커밍스는 “공식 통계에 이러한 변화가 언제, 어떠한 형태로 반영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해외 수출업체들이 자국 통화 결제를 선호하기 시작한 사실만으로도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