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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방산 고압책'에 글로벌 공급망 균열…유럽·한국, 빈틈 파고들며 '약진'

'아메리카 퍼스트' 방산정책의 역설…구매국들, 美 대신 유럽·한국 '눈길'
유럽·K국방, 기술력·맞춤 지원 강점…'미국 빈자리' 빠르게 채운다
영국 군인이 스웨덴 사브(Saab)사가 개발한 신형 경량 대전차 미사일(NLAW)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사진=영국 국방부이미지 확대보기
영국 군인이 스웨덴 사브(Saab)사가 개발한 신형 경량 대전차 미사일(NLAW)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사진=영국 국방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초기, 미국이 특히 국방 수출 분야에서 더욱 강압적인 수출 정책을 펴면서 외교 긴장이 커지고 있다. 공갈과 갈취 혐의를 포함해 논란을 빚는 사건들이 잇따르자, 미국산 무기 주요 구매국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공급처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스웨덴 사브(Saab), 프랑스 다소 항공(Dassault Aviation), 영국 BAE 시스템스(BAE Systems), 독일 라인메탈(Rheinmetall) 같은 유럽 기업과 성장하는 한국 국방산업이 군수 조달처를 다변화하려는 국가들에 믿을 만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팔리시 다이제스트가 1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외교 전담 기관·프로그램의 대폭 축소와 폐지가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키자, 이들 기업은 생긴 공백을 파고들 기회를 잡고 있다.

◇ 스웨덴의 사브


스웨덴 대표 국방기업 사브는 오랜 기간 유럽 무기 수출 시장에서 주요 공급자 역할을 해왔다. 이 회사의 그리펜(Gripen) 전투기는 미국산 F-16에 버금가는 성능으로 평가받으며, 브라질, 일본, 호주,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여러 나라에 수출길을 열었다.

2025년 1분기 기준, 사브는 유럽의 국방 수요 급증 덕분에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고, 생산능력 확대와 고객 납품에 집중하고 있다2. 2024년 블룸버그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의 무기 수출액은 사브의 실적 덕분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브의 미카엘 요한손 최고경영자(CEO)는 "사브가 현재 40만 개의 지상 전투 무기를 생산하는 궤도에 올랐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사브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스웨덴의 NATO 가입 같은 움직임은 포르투갈, 캐나다 같은 새 회원국들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산 F-35 전투기에 '킬 스위치(원격으로 무기 작동을 중단시키는 장치)'가 탑재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외교가의 불안감을 키웠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의혹 해소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백악관 회동이 외교적 실패로 끝난 데다, 행정부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을 향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키웠다. 이런 배경에서 캐나다와 포르투갈 등은 사브의 그리펜-E를 대안으로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 프랑스의 다소 항공


다소 항공은 유럽의 손꼽히는 항공우주·국방 기업으로, 미국 경쟁 기종에 필적하는 군용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대표 기종은 미라주(Mirage) 2000과 라팔(Rafale) M·G 시리즈다. 최근 세계 국방 수요 증가 덕분에 2024년 매출이 이전 해보다 크게 늘었다.
미라주 2000은 1996년 그리스와 튀르키예 사이의 이미아 분쟁 당시 그리스 공군기가 튀르키예 F-16을 격추하며 그 성능을 입증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공군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을 막아내는 데 미라주 2000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호평했다.

한층 발전된 성능과 다양한 기능을 갖춘 라팔 전투기는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라팔은 그리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인도네시아, 인도, 카타르, 이집트, UAE 등 8개 나라에 수출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새로운 잠재 구매국과도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외 다른 나라들도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25년에는 라팔 25대와 팰콘(Falcon) 비즈니스 제트기 40대를 인도할 목표다.

◇ 영국의 BAE 시스템스


영국 최대 국방기업 BAE 시스템스는 항공·국방·정보기술(IT)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고, 세계 손꼽히는 무기 수출 기업이다. 록히드마틴과 F-35 라이트닝 II 전투기 공동 개발에 참여하는 등 미국 기업과의 오랜 협력은 BAE 시스템스의 국제적 입지를 한층 다지는 계기가 됐다. 2025년 매출 성장률 7~9%를 예상하며, 새 인력 2400명을 뽑고 생산설비를 늘리는 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주요 고객은 미국, 호주, 인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 자국군이며, 이들과 대형 계약을 꾸준히 확보하는 한편 첨단 기술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업계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력을 확보한 BAE 시스템스는 세계 국방 시장 재편 과정에서도 선도적인 지위를 유지할 저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 독일의 라인메탈


독일 최대 무기제조업체 라인메탈은 장갑차, 포병, 대공방어 등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는 유럽의 주요 국방 수출기업 중 하나다. 1889년 문을 연 뒤 수십 년 동안 독일 안팎의 군사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주력 제품은 장갑차, 야포, 배회형 탄약(자폭형 드론), 방공 시스템 등이다.

다수 유럽연합(EU) 회원국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뒤 유럽 국방 수요가 크게 늘면서,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포와 방공 시스템 수요가 급증하면서 라인메탈은 사업 확장의 기회를 잡았다. 독일군의 재무장은 물론 유럽의 국방 공급망 강화에도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독일이 국방력을 강화하고 대규모 재무장에 나서면서, 라인메탈이 독일군의 전력 증강과 자립 국방 역량 강화에 중추적인 구실을 할 전망이다.

◇ 한국의 수출


한국 국방산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주요 방산기업들이 유럽과 중동,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지난 1월 한국 국방 수출액은 세계적인 수요 증가에 힘입어 95억 달러를 달성했다.

정부는 혁신 기술과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2027년까지 세계 4대 방산 수출국으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현재 폴란드, 튀르키예, 핀란드, 이집트,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루마니아, UAE 등 여러 나라에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전투기 등 주력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애초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고자 개발된 한국산 무기체계는 유럽 국가들이 포탄 재고를 확충하는 데 긴요하게 활용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2023년 우크라이나의 극심한 포탄 부족 사태는 이러한 평가를 더욱 공고히 했다.

◇ 미국에 대한 시사점


세계 국방 시장의 다변화는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미국 중심의 시장 지배력에는 심각한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이었으나, 동맹국을 압박하고 거래 중심으로 대하는 정책, 외교기관 축소, 신뢰 하락으로 이어져 시장 지배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1위 무기 수출국 지위를 지켜온 미국이 동맹과의 정치적 갈등을 지속할 경우, 시장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동맹을 파트너보다 고객으로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를 우선시하는 접근 방식은 미국의 국방 공약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약화시켰다. 캐나다와 포르투갈 등은 이미 록히드마틴과의 F-35 도입 협상이 틀어질 경우 스웨덴 사브나 한국 등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록히드마틴은 F-35 계약 유지를 위해 캐나다 현지에 생산공장 건설을 제안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의 무기 수출은 오랜 기간 소프트파워 전략의 중심축으로, 세계 각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외교 갈등, 미국 국제개발처(USAID) 같은 국무부 프로그램 예산 삭감, 현 미국 행정부에 대한 국제적 불신 역시 이러한 외교 전략의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독일, 한국 등은 미국산 무기와 달리 정치 제약이 적고, 공급 안정성, 기술 경쟁력, 맞춤형 지원 등에서 경쟁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 해외 고객들이 차츰 다른 공급처로 눈을 돌리면서, 미국의 국방산업 수출은 여전히 규모가 크지만, 유럽과 아시아 경쟁국들의 급부상으로 미국의 독점적 위상은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바야흐로 세계 무기 시장에서 미국의 절대적 지위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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