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남아공 공장 철수, 멕시코·일본도 생산 감축…신흥국 중심에서 북미·중국 등으로 유턴
차종 절반·인력 2만 명 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리바이벌 플랜' 맞먹는 체질 개선 착수
차종 절반·인력 2만 명 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리바이벌 플랜' 맞먹는 체질 개선 착수

18일(현지시각)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닛산은 최근 북미 수출 거점인 멕시코 공장 2곳과 일본 가나가와현에 있는 공장 2곳의 가동 중단 또는 폐쇄 검토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 아르헨티나에서는 각각 현지 생산 공장 1곳씩 문을 닫기로 했다. 감축 검토 대상인 공장 7곳 가운데 일본을 뺀 5곳이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로 불리는 신흥 개발도상국에 있어, 닛산의 전략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 '글로벌 사우스' 축소…선택과 집중 본격화
닛산은 지난 13일 연 결산 설명회에서 전 세계 공장 수를 줄이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구체적으로 인도와 아르헨티나에 이어 남아프리카 공화국 현지 생산을 멈추고, 최근에는 멕시코 내 공장 2곳 추가 감축도 검토 중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멕시코는 닛산의 2024년 전체 생산량 310만 대 가운데 20%인 67만 대를 만든 중요 거점이다. 인도는 한 해 15만 대 넘게, 아르헨티나는 약 2만 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만 대를 만들었다. 이번 구조조정은 신흥 시장을 성장의 핵심 축으로 삼았던 과거 전략과 완전히 결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 과거 '곤 시대' 확장 전략과 결별 수순
지난 1999년,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은 2만1000명의 인력을 줄이는 '리바이벌 플랜'으로 닛산의 위기를 극복한 뒤, 프랑스 르노와 손잡고 세계 시장 확대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2011년 발표한 6년짜리 중기 경영 계획 '닛산 파워 88'에서는 당시 6%에 못 미치던 세계 시장 점유율을 8%까지 끌어올리고, 신흥국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800만 대 넘게 늘린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닷선' 브랜드를 신흥국 전용으로 되살려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만들어 팔았지만, 판매 부진 끝에 2022년 결국 생산 종료를 발표했다.
닛산의 첫 국외 생산 거점이기도 한 멕시코는 미국 수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때문에 생산 거점으로서 이점이 약화됐다. 닛산은 이런 확장 노선에서 생긴 비효율을 신흥국 생산 능력 줄이기로 풀고, 미국, 유럽, 일본, 중국 같은 주요 시장의 판매 효율화와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방침이다.
◇ 중국·미국 등 핵심 시장 경쟁력 강화 사활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는 비야디(BYD)를 비롯한 현지 업체들과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닛산은 중국 내 과잉 생산 능력 해소를 위해 합작 동반자와 의논해 생산 효율성 제고 방안을 모색 중이다. 동시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더한 새 전기 세단 'N7'을 현지에 내놓고 국외 수출까지 하는 등 공격적인 신차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는 경쟁사인 토요타 자동차가 하이브리드차(HV)를 앞세워 잘 팔고 있지만, 닛산은 하이브리드차 라인업이 부족해 고전하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에 따라 현지 생산 중요성이 커지면서, 닛산은 미국 시장 주력 차종 생산 일부를 일본에서 현지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다만, 미국 공장 가동률이 여전히 낮아 앞으로 미쓰비시 자동차 같은 협력사와 공동 활용 방안도 검토할 전망이다.
일본 안에서는 창업지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오하마 공장을 비롯한 공장 2곳의 가동 중단 또는 폐쇄를 검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적정 가동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닛산은 예상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판매 부진을 타개하려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인기 차종 확보가 시급하다. 2025년 내놓을 새 전기차 '리프'를 비롯한 신차 출시 주기를 얼마나 단축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 차종 절반·인력 2만 명 감축…생존 위한 고강도 구조조정
이런 생산 거점 조정과 함께 닛산은 대대적인 비용 절감 계획도 추진한다. 13일 발표한 'Re:Nissan' 계획을 보면, 자동차 기본 뼈대인 차대 수를 현재 13개에서 2035년까지 7개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 부품 수도 70% 줄이는 등 개발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을 대폭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26년까지 2024년보다 고정비와 변동비를 합쳐 총 5000억 엔(약 4조8084억 원)을 절감한다는 목표다. 감원 규모도 기존 계획보다 확대한 2만 명으로, 과거 곤 전 회장의 '리바이벌 플랜'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구조 개혁에 따른 비용 줄이기와 생산 지역 집중은 개별 차량의 수익성 확보가 더욱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닛산의 이반 에스피노사 사장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닛산은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브랜드이며, 이 강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차를 선보일 수 있을지는 에스피노사 사장의 경영 능력에 달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