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전 세계 에너지 수요 70%가 전기로...재생에너지 체계 안정화에 매년 8000억 달러 투자 필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지난 2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20년 만에 유럽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이번 정전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이 암흑에 빠졌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선도해온 스페인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전 세계가 2050년까지 에너지 수요의 70%를 전기로 충족시키려는 계획에 중대한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정전이 일어나자 병원은 일상 업무를 중단했고, 공장과 정유소는 생산량을 줄였으며, 휴대전화 연결망은 끊겼다. 신호등은 멈춰 섰고,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이 나섰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정전 당일 오후 11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 전력망 붕괴 원인과 전 세계적 파장
이번 사태의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다. 스페인의 전력망 운영회사인 레드 엘레트리카는 스페인 남서부 지역의 발전 손실로 갑작스런 고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왜, 어떻게 그렇게 급격히 악화됐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태양광 발전소와 풍력 터빈을 빠르게 늘려온 스페인에서 발생한 이번 사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저탄소 전기로의 전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이 사태가 전통적인 전력 체계와 신재생 에너지 간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재생 에너지 무역협회 수리 셀(SOLER-SER)의 회장 자비에 다발은 "우리의 전력 체계는 예측 가능한 중앙 집중식 발전 시대에 맞게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새롭게 떠오르는 전기 세계는 분산되고 디지털화되며 적응력이 뛰어나다. 이것은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다시 생각해야 하는 패러다임이다"라고 덧붙였다.
◇ 전 세계 에너지 전환과 전력망 과제
에너지 전환 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기후 목표가 이뤄질 경우 2050년까지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수요의 약 70%가 전기로 충족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금 20%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 중 대부분은 풍력 및 태양열 발전소에서 얻을 예정이다.
그러나 재생 에너지가 때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특성을 관리하려면 전기 체계 운영 방식을 크게 개선해야 한다. 화석 연료 화력 발전소가 주던 체계 안정성을 재생 에너지가 대신하려면 새로운 기술 도입이 꼭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화석 연료 화력 발전소가 없어도 전기 체계가 감당할 수 있기 전에 발전소가 문을 닫는 것을 포함한 전기 체계의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대해 경고했다.
"전력망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라고 리액티브 테크놀로지스의 던컨 버트는 말했다. 그는 영국의 전력망을 청정 전력에 알맞게 개선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는 날씨가 아니라 옷이 부적절한 것이다. 재생 에너지라는 새로운 환경에 맞춰 전력망도 그에 맞게 준비돼야 한다"라는 비유를 들며, 전력망이 적절한 기술과 투자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전환 위원회는 기후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전기망이 2023년 약 6800만 km에서 약 1억2000만 km로 늘어나야 한다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 2030년대와 2040년대에는 해마다 약 8000억 달러(약 1120조 원)를 투자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앞으로 10년 동안 유럽 전력망에 5840억 유로(약 924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많은 분야에서 투자가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이런 비용 문제점을 두고 무역 그룹 유렉트릭의 사무총장 크리스티안 루비는 "기술 전반에 걸쳐 돈이 모자라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 중국은 태양광 및 풍력 발전소를 주요 수요 중심지와 연결하려고 올해에만 840억 달러(약 117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전력 체계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인도는 2012년 6억2000만 명이 정전을 겪은 뒤 전력망을 개선했지만, 더운 시기에 냉방 수요 증가로 체계에 압박이 올 것을 걱정하고 있다.
"스페인 반도는 텍사스보다 다른 지역과의 전력 연결망이 더 있지만, 그 수준은 여전히 충분치 않다"고 워싱턴에 본사를 둔 그리드 스트래티지스의 부사장 마이클 고긴은 말했다. 그는 "대규모 정전 사태를 효과적으로 막으려면 인접 지역과 더 많은 전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강화된 송전망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알루미늄 생산회사 알코아의 최고경영자 윌리엄 오플링거는 "전력망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전기가 계속 공급될 것이라 보장할 수 없는 곳에서 전기를 많이 쓰는 사업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라고 우려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