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위협·미국 불확실성 속 재무장 시급… 속도·가격 경쟁력 앞세워 안보 공백 메우기 나서
나토 호환성·기술 이전도 강점… 폴란드 수출 성공 후 동·북유럽 '러브콜'
나토 호환성·기술 이전도 강점… 폴란드 수출 성공 후 동·북유럽 '러브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이 재무장을 서두르는 가운데, 미국의 안보 협력 상대 역할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에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 국방비 지출을 압박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높아졌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방위산업(K-방산)이 유럽 안보 공백을 메울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디펜스 포스트가 지난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빠른 납품 능력, 비용 효율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표준과 호환성, 그리고 한국 내 초당적 정치 지원과 유럽과 전략 연대가 K-방산의 강점으로 꼽힌다.
◇ 미국 의존도 다시 생각하는 유럽, K-방산에 주목
최근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은 노르웨이, 루마니아,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을 찾아 한국 무기체계를 홍보하고 유럽연합(EU)과 나토 관계자들과 방산 협력을 논의했다. 매우 시기적절한 행보라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동맹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잠시 멈췄던 전례 때문에 많은 유럽 국가는 미국 무기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침공과 예측하기 어려운 미국 외교 정책은 유럽이 자체 억지력 강화와 국방 통제권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유럽의 목표는 국방비 증액, 미국 의존도 감축, 자체 방위 산업 기반 강화로 요약된다.
그러나 유럽의 자체 방산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다. EU는 최근 1500억 유로(약 237조6390억 원) 규모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역내 방산 역량 강화를 추진하지만, 주로 EU 회원국 제조업체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럽 방위산업은 여전히 나뉘어 있고 전략 방향이 부족하며 미국 무기체계 의존도가 높다. 당장 현대적이고 믿을 수 있으며 서로 운용 가능한 무기체계가 시급한 유럽의 처지와는 거리가 있다.
◇ '납기·가격·호환성' 삼박자...K-방산 경쟁력 주목
바로 이 지점에서 K-방산이 주목받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고 경쟁력 있는 무기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폴란드와 120억 달러(약 16조8300억 원) 넘는 계약으로 K2 주력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를 성공적으로 수출한 것이 대표 사례다.
노르웨이, 루마니아, 핀란드 등 다른 나토 회원국들도 낡은 무기 현대화를 위해 한국산 무기체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K-방산의 매력은 여러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나토 표준과 높은 호환성이다. 폴란드가 K2 전차, K9 자주포, FA-50을 자국 군대에 빠르게 통합 운용하며 이를 증명한다.
둘째, 빠른 생산 및 납품 속도다. 유럽이 자체 생산 역량을 확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반면 한국은 튼튼한 산업 기반과 수출 준비된 재고를 바탕으로 몇 년이 아닌 몇 달 안에 현대 장비를 공급할 수 있다. 폴란드는 계약 뒤 불과 4개월 만에 K2 전차와 K9 자주포 처음 물량을 받았다.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의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속도는 유럽에 매우 중요하다.
셋째, 뛰어난 비용 효율성이다. K-방산은 높은 품질의 무기체계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공해 많은 국가에 매력적인 대안이 된다.
넷째,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 협력이다. 한국 기업들은 종종 구매국에서 현지 생산을 포함한 기술 이전 협정을 제안한다. 이는 무기 확보 기간을 줄일 뿐 아니라 구매국의 방위산업 역량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 폴란드는 K2 전차와 K9 자주포의 현지 생산 계약을 통해 2026년부터 'K2PL' 모델의 본격 생산을 앞두고 있다.
◇ EU 장벽·정치 변수 속...'신뢰 파트너' 부상
K-방산 수출은 한국 내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는다는 점도 강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크게 늘어난 방산 수출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주요 정책으로 추진됐다.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대통령 권한대행 때 유럽으로 K-방산 수출 확대 중요성을 강조했다. 차기 대권 주자들 역시 방산 수출 확대에 긍정 생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초당적 합의는 K-방산이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협력 분야임을 보여준다.
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EU는 역내 산업 육성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으며, 유럽 국가 사이 정치 연대가 무기 구매 결정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노르웨이 정치인 마수드 가라카니는 자국이 한국 K2 전차 대신 독일 레오파르트 전차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 성능 차이보다는 유럽 안 방산 협력 유지를 위한 정치 고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방산업체들은 기술 이전에 적극 자세를 보여, 유럽 방산 성장과 서로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일부 유럽 국가는 여전히 미국제 무기체계에서 벗어나기를 망설일 수 있다. 미국의 군사 지원 없이는 유럽 안보가 취약하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외교 정책을 예측하기 어려움에 대한 환멸감은 덴마크, 독일 등 유럽 곳곳에서 퍼지는 추세다. 한 덴마크 의원은 미국산 F-35 전투기 도입 뒤 "미국 무기를 사는 것은 우리가 떠안을 수 없는 안보 위험"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정학 측면에서도 유럽과 한국의 연대 강화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군수품과 병력을 지원하며 가까워지는 반면, 한국은 서방과 가치를 나누며 우크라이나에 인도 지원을 하고 나토 동맹국에 핵심 무기체계를 공급하고 있다. 민주주의, 수출 중심 경제, 권위주의 이웃 국가라는 공통 환경은 재래식 무기를 넘어 사이버 안보, 비확산, 전략 기술 등 더 넓은 분야에서 협력 토대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단순한 무기 공급자를 넘어 유럽과 공동 위협과 가치를 나누는 믿을 만한 협력 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우수한 성능, 빠른 납품, 서로 운용 가능한 점을 갖춘 K-방산은 유럽의 안보 공백을 메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잠재력을 지녔다. 미국의 역할이 불확실해지는 가운데 한국과 관계 강화는 유럽의 앞날 안보 지형을 그리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서울은 유럽의 변화하는 안보 구조에서 단순한 공급자를 넘어 전략 핵심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