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루블화는 올해 장외 시장에서 달러 대비 38%나 상승하며 최고의 성과를 보인 통화로 등극했다. 루블화는 심지어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값의 상승 폭도 앞지르는 기염을 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달러화가 압박을 받는 사이 루블화를 기록적으로 높은 현지 금리와 자본 통제 등으로 강세를 보였다.
T-인베스트먼트의 소피아 도네츠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신흥국 통화와 달리 루블화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회피로 인한 자본 유출 압력에 직면하지 않고 있다"면서 "자본 통제와 높은 금리가 루블화를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동맹국들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최근 달러화의 광범위한 하락 기조도 루블화의 상승 압력으로 가세했다.
루블화에 이어 금값은 올해 달러 대비 23% 오르며 상승 폭이 컸던 자산 목록 2위에 등극했다. 스위스 크로네와 은값은 각각 달러 대비 14%와 12% 상승하며 역시 높은 수익률 기록했다.
이어 스위스 프랑(11%), 체코 코루나(10%) 및 일본 엔화(10%) 등도 달러 대비 강세를 보였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러시아 중앙은행이 초 매파적 통화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러시아의 기준금리는 현재 21%에 달한다. 높은 기준금리로 인해 러시아의 수입 수요와 외국 통화에 대한 수요가 모두 억제되면서 루블화 강세를 뒷받침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또한 현지 수출업체들은 외화로 발생한 수입의 일부를 현지 시장에 매각해야 하는데 이는 루블화의 상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의 대러시아 정책 해빙 분위기도 루블화의 매력을 되살리고 있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이스타 캐피털의 이스칸데르 루츠코 포트폴리오 관리 책임자는 "제재 위험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안겨다 주는 루블화 자산에 노출되기 위해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로 눈을 놀리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러시아 기업들은 훨씬 저렴한 중국 위안화 표시 대출을 활용해 고비용의 현지 통화 부채 재융자를 꾀하고 있다. 이는 외화를 루블화로 환전하려는 추가적인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알렉스 이사코프 러시아 이코노미스트는 루블화가 연초부터 상승한 배경으로 세 가지 요인을 꼽았다. 그는 "올해 초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해빙 무드로 러시아 시장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고, 긴축적인 통화 정책으로 기업과 소비자의 수입 수요가 줄어든 데다, 러시아 정부가 국부펀드의 경화(hard currency·미국 달러와 같이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통화)를 매각해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부터 경제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정학적 상황이 개선되자 러시아 자산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루블화의 강세가 촉발된 것으로 분석했다. 은행은 상대적으로 높은 기준금리도 루블화 강세 요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분기 러시아의 금리 인상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단기적으로 루블화의 강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