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안보강화 30단계 계획 발표...스웨덴 등 NATO 국가들 국방비 GDP 3.5% 이상 늘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안보 위협이 여전한 가운데 EU가 각 가정에 72시간 분량의 비상물품 비축을 권고하는 30단계 계획을 발표했다고 2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또한, 같은 날 EU는 러시아가 요구한 농업은행 제재 완화를 거부하며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의 "무조건적 철수"까지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새로운 현실은 유럽에서 새로운 수준의 대비를 요구한다"며 "우리 시민, 회원국 및 기업은 위기를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올바른 도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EU, 위기 대비 30단계 계획 발표…72시간 비상물품 비축 권고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발표한 30단계 계획에서 "회원국에 대한 무력 침략 가능성을 포함하여 위협이 증가했다"고 경고했다. 이는 유럽 정보기관들이 러시아가 3~5년 이내에 EU 회원국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기후변화로 악화된 홍수와 산불을 포함한 자연적 위협과 금융위기 같은 사회적 위험도 언급했다.
이번 계획은 핀란드의 전 대통령 사울리 니니스퇴가 지난해 10월 EU의 의뢰를 받아 발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해당 보고서는 유럽이 냉전 종식 이후 안전을 당연하게 여겼고 이제는 취약해졌다고 경고했다. 계획은 핀란드, 스웨덴, 벨기에 등의 국가에서 오랫동안 지속돼온 위기 대응 정책에서 차용했으며, 일부 회원국의 위기 대응 능력 부족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도 있다.
EU는 시민들에게 "비상시 최소 72시간 동안 필수 물품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채택하도록 장려"하는 한편, 국경 간 대응을 조정하기 위한 "EU 위기 허브" 설립도 제안했다. 또한, 중요 장비 및 자재 비축을 늘리고, 분쟁이나 재난 발생 시 의료, 물 공급, 통신과 같은 서비스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도 촉구했다.
카야 칼라스 EU 집행위원회 외교·안보정책 담당 부회장은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외부 안보 도전과 점점 더 많은 하이브리드 공격에 직면해 있다"며 "유럽이 모든 전선과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위기의 결과에 대처하는 것보다 위기를 예방하는 것이 항상 낫다"고 말했다.
이러한 EU의 움직임은 스웨덴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로 늘리겠다고 FT가 26일 보도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이것은 냉전시대 이래 스웨덴 방위의 가장 큰 재무장"이라며 2035년까지 약 300억 달러(약 44조원)를 차입해 이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략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의 방위를 위해 더 많은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고 경고하는 이중 위협 속에서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다.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최전선 국가들은 내년부터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외교관들은 올여름 헤이그에서 열릴 NATO 정상회담에서 군사 동맹의 목표가 현재 2%에서 약 3.5%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러시아 제재 완화 요구 거부…무조건적 철수까지 유지
한편 EU는 미국이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와 에너지 인프라와 흑해를 포괄하는 휴전에 합의했다는 발표 이후 러시아가 요구한 농업은행 제재 완화를 거부했다.
러시아는 식량 생산과 수출에 대한 자금 조달에 관여하는 은행인 로셀호스방크(Rosselkhozbank)에 가해진 제재 철회와 글로벌 스위프트 뱅킹 메시징 시스템 재연결을 요구했으나, EU는 이를 명확히 거부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러시아의 요구가 유엔과 튀르키예가 중재한 2022년 버전의 흑해 거래에서 합의했다고 주장한 내용을 반복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러시아는 이 협정에서 2023년에 일방적으로 탈퇴한 바 있다.
아니타 히퍼 EU 집행위원회 외교부 대변인은 FT에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이유 없고 정당하지 않은 침략을 끝내고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에서 모든 러시아 군대를 무조건적으로 철수하는 것이 제재를 수정하거나 해제하기 위한 주요 전제 조건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히퍼 대변인은 또한 "EU의 주요 초점은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제재를 포함해 사용 가능한 모든 도구를 사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EU의 제재가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와 제3국 간의 식량·곡물·비료를 포함한 농산물 무역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며 러시아의 비난을 일축했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농업 부문에 대한 제재 완화를 조건으로 한 해양 휴전은 리야드에서 열린 회담에서 합의된 바 없다고 지적하면서 "크렘린이 다시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