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둔화에 몸살 앓는 파워 반도체 업계, 대규모 구조조정 현실화
기술력 우위에도 고립된 일본 기업들, 생존 위한 '합종연횡' 모색
기술력 우위에도 고립된 일본 기업들, 생존 위한 '합종연횡' 모색

파워 반도체는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부품으로, EV의 주행 거리와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인공지능(AI) 반도체와 함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으며 일본 기업들이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다. 이러한 시장 전망에 따라 글로벌 선두 기업들은 그동안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투자를 경쟁적으로 진행해 왔다.
하지만 최근 EV 시장 성장세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면서 과잉 생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피니온은 이미 1400명의 인력 감축과 함께 1400명 규모의 인력 재배치를 단행했다. 업계 2위인 미국 온세미 역시 약 1000명에 달하는 인력 감축 계획을 공식화했으며, 3위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도 희망퇴직자 모집을 통해 인력 감축에 나설 예정이다.
일본 상황도 마찬가지다. 르네사스는 2024년 10~12월 공장 가동률이 30% 수준으로 직전 분기(7~9월)의 40%에서 하락했다. 또한, 2025년 내 최대 수백 명의 인력 감축을 예고했으며, 2025년 초로 예정됐던 야마나시현 가이시 소재 고후 공장의 파워 반도체 양산 시점도 연기했다.
구조조정의 여파는 부품 및 소재 분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라고 외신은 전했다. 파워 반도체 웨이퍼 제조업체인 미국 울프스피드는 2025년까지 전체 직원의 20%에 해당하는 약 1000명을 해고할 방침을 밝혔다.
EV 구동 장치용 파워 반도체 복합 부품을 생산하는 산켄전기는 당초 2024년 내로 계획했던 증산 시점을 2년가량 늦추기로 했다. 스미토모전기공업은 도야마현의 반도체 소재 신공장 건설 계획과 효고현 공장의 신규 라인 설치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EV 판매량은 전년 대비 9% 증가한 약 1137만 대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성장률 30%, 2022년 성장률 75%에 비해 현저히 둔화된 수치다. 파워 반도체 재고 역시 증가 추세다. 일본, 미국, 유럽 주요 7개사의 제품이 생산된 후 판매되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2024년 10~12월 기준 99일로, 전년 동기 대비 18% 늘었다.
중국 업체의 급성장 또한 시장 경쟁 심화를 부추기고 있다. 비야디(BYD)는 2024년 초부터 자체 EV용 파워 반도체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르네사스 등으로부터 파워 반도체를 조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위에신반도체기술(캔세미)도 고성능 파워 반도체 양산에 돌입하며 시장 경쟁에 가세했다.
미국 정부의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대중국 수출 규제 역시 파워 반도체 분야 투자 확대를 야기하고 있다.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장비를 집중적으로 구매하여 파워 반도체 생산 능력 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조업체의 한 간부는 "중국 업체와의 기술 격차는 수년 전만큼 크지 않다"고 언급하며 중국 업체의 빠른 성장세를 경계했다.
일본 기업들은 파워 반도체 기술력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규모와 자금력 면에서는 유럽 및 미국 기업에 비해 열세다. 미쓰비시전기, 후지전기, 로옴 등 일본 주요 3사의 시장 점유율을 합산해도 약 11%에 불과해, 시장 점유율 1위인 인피니온(약 20%)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협력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시바와 로옴은 약 3800억 엔(약 3조7016억 원), 후지전기와 덴소는 약 2100억 엔(약 2조456억 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공동으로 진행할 방침을 밝혔다. 특히 덴소는 로옴에 일부 지분을 투자하고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는 등 기업 간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