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佛·獨 등 유럽 안보에 투입되는 연간 8000억 달러 미국 방위비 부담 전환 논의

영국, 프랑스, 독일, 북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NATO 탈퇴로 인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비공식적이지만 구조화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이 협의에 직접 참여한 유럽 관계자 4명이 FT에 밝혔다. 이들은 재정적·군사적 부담을 유럽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수립해 오는 6월 헤이그에서 열릴 NATO 연례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측에 제시할 예정이다.
◇ 연간 8000억 달러 방위비와 핵 억지력 공백 메우기 위한 역량 확충
미국은 다른 모든 NATO 동맹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며 유럽 안보의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핵 억지력 외에도 유럽 동맹국이 보유하지 않은 첨단 군사 능력을 제공하고, 주요 공군·해군 기지를 운영하며, 현재 유럽에 8만 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이번 유럽 측 제안은 국방비 대폭 증액과 군사력 증강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포함한다. "지출을 늘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부담을 분담하고 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FT에 말했다. 이어 "우리는 그 대화를 시작하고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 큰 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 규모에 압도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들은 미국의 핵 억지력을 제외하고 유럽의 역량을 대부분의 미국 역량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5~10년 동안 지속적인 국방비 증액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프랑스·영국 주도 '의지의 연합' 형성…미국 없는 NATO 준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 당선 이후 국방비 지출을 늘리거나 이미 계획된 군비 증강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의 군사 투자 증액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논의가 오히려 미국의 조기 철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부담 전환 회담에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다. "미국 측과 협상이 필요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협상에 응할 의향이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이 논의에 참여한 또 다른 고위 관리는 FT에 말했다. 이어 그는 "설령 협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미국이 합의 사항을 장기적으로 지킬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관계자들은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하는 '의지의 연합' 형성에 관해 지속적인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연합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유럽 방위에 투자하기 위한 것으로, 12개 이상의 유럽 방위 강대국이 참여하며 미국은 관여하지 않는다.
NATO 내에서 미국 없이 유럽 국가들만의 독자적 방위체제 구축이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한 FT의 질문에 서방 고위 관리는 "우리는 이미 그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미국의 참여 없이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의 국제 안보 담당 선임 연구원 매리언 메스머(Marion Messmer)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철수하더라도 NATO는 여전히 유럽의 안보 협력을 위한 기본 틀을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빠질 경우 일부 군사적 역량은 반드시 대체해야 하지만, NATO는 이미 유럽 국가들에 익숙한 조직 구조와 군사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유럽만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방위체제를 처음부터 구축하는 것보다 기존 NATO 체제를 활용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NATO 내 여러 관계자들에 따르면, 효과적인 유럽 방위를 위해서는 제5조 상호방위 조항을 중심으로 한 기존 체제가 중요하며, 특히 대서양 해군력을 보유한 영국, 북유럽 국가들의 해양 안보 역량, 그리고 남동부 방어에 핵심적인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위치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FT는 보도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