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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 성생활, 삶의 질과 인간 존엄성에 직결된 문제

[힐링마음 산책(305)] 고령화 사회와 노년의 성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모여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모여있다. 사진=뉴시스
2002년 12월에 개봉된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세간의 큰 화제가 됐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신예 박진표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에 출연한 두 사람은 실제로 부부였고, 당사자들이 직접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두 사람 모두 일흔을 넘겼고, 각자의 배우자와 사별하고 외롭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운명처럼 만났다. 한시가 안타까운 두 사람은 만난 그다음 날부터 동거하며 여느 신혼부부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왕성한 성관계를 가지며 진실하고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 이 영화가 충격적인 것은 두 주인공이 여러 번에 걸쳐 실제로 섹스하는 장면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애초에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제한상영가’로 판정했다. 하지만 제한상영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이 영화를 일반인이 볼 수 없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결국 감독 등 여러 평론가들을 비롯한 여론 주도층과 국제영화제의 역할에 힘입어, 일부 장면을 어둡게 색보정하기는 했지만 삭제하지 않고 개봉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다루었다기보다는 아마도 ‘노년의 성(性)’이라는 금기시됐던 주제를 적나라하게 다룬 데 대한 당혹스러움과 죄의식이 아닐까? 왜냐하면 젊은이들의 성애를 다룬 영화에서는 그보다 훨씬 노출이 심하고 노골적인 장면도 별 탈 없이 상영되기 때문이다. 성에 대해 유교적 전통이 강한 20여 년 전의 우리 문화에서 노인의 성은 애써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은연중에 노인들은 더 이상 성을 원하지 않거나 초월했다고 치부해왔다. 이 현상은 마치 자신의 부모는 추잡하다고 느껴지는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여기는 자녀들의 환상과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부모의 성행위를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이 본 것을 강하게 부정하고 지나치게 비난하는 현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특히 '죽어도 좋아'는 지금껏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와 섹스를 둘러싼 윤리와 관습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내용의 영화다. 가히 급진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용이다. 그것도 실제로 노인들이 성관계를 갖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2024년 12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행정안전부가 분석한 2024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4년 12월 31일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1025만6782명으로, 전체 인구의 20.03%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에는 국내 고령인구 비율이 40%가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2024년 10월 대한노인회장이 노인 연령을 75세로 올리자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할 지경이다. 정부 역시 2025년부터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로 높이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고령사회가 되자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이들은 오랜 경제 활동과 사회 경험을 통해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으며, 자녀 양육이나 업무 등에서도 자유로워 시간적으로도 여유롭다. 노인이라곤 하지만 의료기술의 발달로 과거 세대보다 훨씬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갈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세대다. 이런 현실에서 노인의 성은 더 이상 금기시하고 어두운 광에 처박아두고 없는 척할 수는 없다.
노인의 성생활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적 금기가 존재한다. 노인들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은 "생뚱맞게 나이 들어 무슨 성생활이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랑과 성적 욕구를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기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감정도 사라질 것이라고 추단한다. 즉 노인이 되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中性)이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는 단지 편견일 뿐이다. 사랑과 친밀감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본질적인 요소다. 다시 말해, 성생활은 젊은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년에도 계속 지속되고 충족되어야 할 본성이다. 이 현상은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진행된 연구(National Social Life, Health, and Aging Project) 결과에 따르면, 57~85세 노인 중 절반 이상이 여전히 성생활을 즐기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이 심리적 안정감과 삶의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다. 즉 성생활을 즐기는 노인이 그러지 않는 노인보다 훨씬 즐겁고 만족스러운 노년기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년기의 성생활은 단순히 육체적인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생리적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인간 존엄성에 직결된 중요한 요소다. 성적 친밀감은 정서적 안정과 자아 존중감을 높여주고 심리사회적 만족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이는 현대 노년학에서 점차 강조되고 있는 핵심 부분이다.

노년에도 지속적으로 즐거운 성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성에 대한 상식적인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성욕(性慾)을 인간 행동의 원초적인 욕구로 파악하고, 그것이 우리의 일상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제일 먼저 체계적으로 연구한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따르면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즉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성욕을 느끼고 만족하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성욕은 단지 청소년기 이후부터 이성(異性)과 성기의 접촉을 통한 성교(性交)에 의해 만족하려는 욕구만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신체를 통해 일체의 즐거움을 얻으려는 욕망’이 모두 성욕이라고 한다. 신체를 통한 즐거움은 다른 말로 하면 ‘오감(五感)’을 통한 즐거움이다. 즉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통한 즐거움은 모두 성이다. 예를 들면, 젖을 배부르게 먹은 뒤에도 유아들이 어머니의 젖을 계속 물고 있는 것은 입술과 혀의 촉각을 통한 즐거움을 얻는 행위이기 때문에 ‘성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가족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들으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성욕을 만족시키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이라고 생각하는 그 범위를 너무 좁힌 것이다.

노년에도 성을 즐기기 위해서는 ‘삽입(揷入)’을 통한 성행위만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통해서도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서로 친밀하게 주고받는 대화나 부드러운 애무나 포옹, 입맞춤 등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도 깊은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생리적인 변화로 오히려 성기를 통한 성행위를 지속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삽입을 하기 위해서는 남성은 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노년이 되면 발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여성의 경우 통증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삽입을 통한 성관계만을 고집할 경우 오히려 성행위를 피하게 될 수도 있다.
2017년 리테쉬 바트라(Ritesh Batra)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은 '죽어도 좋아'처럼 적극적으로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노년의 성의 의미를 아름답게 그려낸 수작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남자주인공 역을 맡은 로버트 레드퍼드(Robert Redford)는 당시 82세이고, 여자주인공을 맡은 제인 폰다(Jane Fonda)는 81세의 나이로 열연했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작은 마을에 오래전에 홀아비가 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남자주인공은 쓸쓸히 낡은 안락의자에 앉아 일기 예보를 알리는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별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나이 든 여자주인공이 현관문을 두드린다. 그들은 이웃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둘이 어색하게 마주 앉자 여자주인공이 떨리는 목소리로 찾아온 용건을 이야기한다.

"한 가지 프러포즈를 하려고요. 물론 청혼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언제 한번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자면 어떨까요? 섹스하자는 게 아니고 함께 이 끔찍한 밤을 견뎌보자고요. 긴 밤이 너무 지겹지 않나요? 내 침대에 같이 누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잠이 잘 올 거 같아서요."

노년이라고 해도 또 미국이라고 해도 부부가 아닌 남녀가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남자는 망설이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가족이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노인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외로움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 흉금을 털어놓는다. 이들은 잠자리를 함께하면서 허물없이 털어놓는 대화가 그리웠던 것이다. 이 영화는, 노년의 성은 같은 침대에 누워 서로 다정히 손을 잡고 담소를 나누며 상대를 인정해주는 행위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성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년기의 성생활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노인 스스로도 자신의 성적 욕구를 부끄러워하게 만들고,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고 위선적인 생활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런 노년이 즐거울 리 없다. 노년이 즐겁지 않은 사회는 후진적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감정이 존중받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 사랑과 친밀감은 우리의 삶에 활력을 주는 본질적인 요소다.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 하고, 누군가와 따뜻한 순간을 나누고 싶어 한다. 성행위는 그것을 제일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수단이다. 노년의 성생활은 단순히 육체적 행위를 넘어 인간으로서 존엄과 삶의 만족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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