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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가족주의 전통의 성(姓) 채택, 전통 계승의 '딜레마'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80)] 성(姓)의 문화적 의미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4-02-21 09:46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결혼식을 갓 마친 신혼부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결혼식을 갓 마친 신혼부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앞으로 생길 자녀의 성(姓) 문제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파혼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전해졌다. '반반 결혼 시 아이 성 문제'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 따르면, 3살 연상인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 중인 예비신부는 결혼 후에도 각자 돈 관리를 하면서 월급 일부를 공용 통장에 저축해 대출 이자와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돈은 각자가 자유롭게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예물과 혼수도 모두 생략하고 가진 현금 자산을 모두 집을 사는 데 투자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육아와 관련된 사소한 문제들도 있지만 정작 큰 문제는 예비신부가 아이의 성씨를 자신의 성으로 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예비신부에 따르면, "아이 만드는 건 10개월 동안 제가 거의 다 하는데, 아이 성은 제 성을 주고 싶다.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었다.

민법 제781조에 따르면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혼인 신고할 때 '자녀의 성·본은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했는가'라는 조항에 '예'라고 표기하고 별도 협의서를 제출한 경우 자녀에게 모의 성·본을 물려줄 수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실제로 혼인신고 시 자녀가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도록 협의해 신청한 건수는 전체 혼인 건수 중 0.16∼0.32% 수준이다. 미미하긴 하지만 실제로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결혼이 있고, 또 해가 갈수록 그 숫자는 늘어가는 추세다. 예를 들면, 2018년에는 254건이었지만 2021년에는 612건으로 늘었다.

여성 사회활동 활발해지면서 예비부부 姓선택 놓고 갈등


전통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성(姓)은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인 칭호다. 주로 아버지와 자식 간에 대대로 계승된다. 자식에게 아버지의 성을 물려주는 '부성주의(父姓主義)'는 극소수의 모계(母系)사회를 제외하고는 동서양 거의 모든 문화에서 공통이다. 모계사회라고 해도 어머니가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남자 친족들이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는 제도다.

부성주의와 함께 성(姓)과 관련해 논쟁이 되는 것은 부부별성제(夫婦別姓制)와 부부동성제(夫婦同姓制)에 관한 것이다. 부부동성제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인데, 결혼하면 부부가 같은 성씨를 쓰는 혼인제도다. 일반적으로 부부동성제 국가에서는 부인의 성(maiden name)이 결혼 후 남편의 성(married name)으로 바뀌는 것이 관습이다. 영미권 기혼 여성의 경우 영국은 90%, 미국은 70% 정도가 남편의 성을 따른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부부동성제를 따른다. 일본의 부부동성제는 꼭 부인이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를 수도 있다. 다만 4% 정도만 남편이 부인의 성을 따를 정도로 그 수가 적을 뿐이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성화되고, 특히 전문적인 일을 많이 하는 현대에서 부인이 결혼 후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다. 결혼하는 순간 여성은 신분증,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등을 모두 재발급받아야 할뿐더러 만약 여성이 작가나 학자라면 본의 아니게 심각한 경력 단절을 가져올 위험성도 크다. 예를 들면, 결혼하기 전에 자신의 원래 이름으로 연구 업적을 발표했지만 결혼 후 남편의 성으로 바꾼 경우에는 연구 실적이 없거나 저조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교육을 더 많이 받았으며 재정적으로 독립한 여성일수록 본래의 성을 지키려는 경향이 점점 더 커져간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직도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결혼 후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들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부부 동성으로 하는 이유는 성(姓)이 가족의 일체감과 결속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부부별성제, 가문 간 결합 의미…결혼 통한 처가 유지, 생존 유리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부부별성제를 택하고 있다. 즉, 결혼을 해도 부인이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본래의 성을 유지한다. 외관상으로는 결혼 후에도 부인의 성을 유지하는 것이 남녀평등에 더 가깝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남녀평등의 정신이 부부별성의 이유라면 여자에게도 마땅히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큰 역할을 하는 개인의 이름을 주었어야 한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에게는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족쇄를 채웠다는 것을 보면 남녀평등을 부부별성의 이유로 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의 강요는 여성을 남성과 평등한 인격체로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부부별성제나 부부동성제가 채택되는 이유로는 성(姓)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부부동성제를 채택하는 문화에서 성은 동일한 가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가족을 이루면 그 가족은 동일한 성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성이 동일해야 같은 가족으로 인정받고 동시에 결속력과 일체감이 고양된다고 느낀다. 동일한 성을 가지려면 결국 남편과 부인의 성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거나, 제3의 성을 만들어야 한다. 제3의 성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남편과 부인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지금까지의 예를 보면 거의 모든 문화에서 남편의 성을 택했다. 이런 문화에서는 성(姓)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부부별성제를 택하는 문화에서는 성(姓)의 의미가 훨씬 중요하다. 특히 "성을 갈아라"라는 것은 상당히 심한 욕(辱)이 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문화의 특징은 '가부장적 가족주의'다. 가족주의는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개개의 가족원보다 중시하고, 가족적 인간관계를 다른 사회관계에까지 확대 적용하려는 특징이 있다. 이때 가족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내려오고 또한 자손 대대로 내려가야 되는 혈연관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혈연관계는 성(姓)을 통해 이어지고 또 확인할 수 있다. "성을 갈아라"라는 뜻은 개인의 정체성에 근본이 되는 혈연관계를 끊으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심한 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같은 성씨의 씨족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集姓村)에서 성을 가는 것은 추방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는 상당히 위협적인 언사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혈연은 남자를 통해, 즉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통해 연속된다고 간주된다. 그래서 이런 문화에서는 딸보다 아들을 우선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남존여비(男尊女卑)'의 문화가 싹튼다. 딸은 '출가외인(出嫁外人)'이 되어, 일단 결혼하면 친정과는 남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여자에게 이름을 줄 필요가 없었다. 필요가 없었을뿐더러 개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은 오히려 '삼종'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자에게는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 성 따르는 사례 급증…과거 풍습 고집할 필요 없지만 급속한 변화도 혼란만 가중


여자에게 성(姓)을 준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알게 하는 의미 외에도 또한 결혼을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가문 간의 결합으로 보는 경향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여성이 결혼하면서 성을 바꾸면 그 출신 가문이 없어지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문 간의 연대(連帶)가 약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끊임없이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면서 불안한 삶을 영위하는 환경 속에서는 결혼을 통해 또 하나의 가문인 처가(妻家)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생존하는 데 훨씬 더 유리했을 것이다.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안동 김씨나 여흥 민씨의 경우처럼 '외척(外戚)'이 득세한 조선시대를 돌아보면 결혼을 통한 세력의 확대와 보존은 매우 중요한 생존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의 성(姓)을 결혼 후에도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유지하는 데 중요했던 제도로 '호주제(戶主制)'가 있었다. 호주를 중심으로 호적에 가족집단[家]을 구성하고 이를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남자만의 혈통을 통해 대대로 영속시키는 제도였던 이 제도는 유림(儒林)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8년 1월 1일 폐지되었다. 또한 부부별성제이지만 아버지의 성만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부성주의(父姓主義)도 위에서 언급한 대로 법으로는 폐지됐다고 할 수 있다.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기로 협의했다는 것을 밝히면 '모성(母姓)'을 따를 수 있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는 경우는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지탱하던 두 가지 핵심적인 제도는 법적으로는 폐지되었고, 그만큼 우리의 가족문화는 변하고 있다.

문화는 계속 변한다. 생각보다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화는 주어진 환경에 제일 효율적으로 적응하는 생활양식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문화가 변하는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풍습을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는 미명으로 계속 지키려고 고집해서도 안 되지만, 소수의 이념이나 가치에 따라 급속히 변화시키려고 해도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변화에 제일 적합한 속도와 방향을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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