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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기억이상에 관한 무용적 고찰…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기사입력 : 2018-12-2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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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전문무용수지원센터 후원으로 2018년 두리춤터기획 우수작가전에 초대된 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은 평소에 생각나지 않던 일들이 비정상적 상태에서 재생되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최면상태에 빠지거나 열이 심할 때, 평상시에는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을 쉽게 생각해내는 이상기억은 각 장르의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기억-앙진>(記憶-昂進, Hypermnesia)은 선은지, 김시원, 김현우, 송윤주, 황경미가 공동창작으로 참가, 자신들이 체험한 에피소드들을 선물 보따리를 풀 듯 옴니버스 식으로 전개시킨다. 춤에서 다루어지는 심리적 현상들은 대중들과의 친밀감과 소외감을 동시에 부를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안무가 김주빈은 특유의 능력으로 무난하게 작품을 소화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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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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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

매일의 기억용량을 초월하여 기억해내는 회상장애(回想障碍), 기억해낼 수 없는 오래된 기억이나 억눌려 있던 경험을 판단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인 힘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 조현병자(정신분열병자)에게서도 이런 현상이 보인다. <레인맨>에서 자폐증 환자인 레이먼(더스틴 호프만)이 기억해내는 현상처럼 저지능인이 특정 사실을 잘 기억하는 경우에도 이와 흡사하다.

<기억-앙진>은 ‘누구나 과거의 기억 속에 상처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간다.’는 전제를 깐다. 그 상처는 사람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음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오프닝은 관객참여를 독려하면서 비행기를 접을 수 있는 종이를 선사한다. 조금 생소하지만 종이비행기에 자신의 기억을 적어 춤이 진행되는 동안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 던지도록 유도한다.

<기억-앙진>은 전주영의 도입부 영상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 누구나 상처 하나 씩은 가지고 살아간다. 무용에 출연하는 전체 무용수의 꿈이 성장하고, 즐겨 다녔던 곳곳을 영상이 포착해낸다. 영상 자체만으로도 단편영화의 특질을 지닐 정도로 우수하다. 영상이 과거의 흔적과 기억들을 훑어가다보면 현재와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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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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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

경미의 꿈, 지하철 문이 열린다. 텅 빈 지하철 안에 아버지가 누워 있고, 사람들이 빙 둘려서 기도를 하고 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불안을 유발한다. 경미는 누구인가에 의지하고 싶어 한다. 동생 은지만은 지키고 싶은 언니 경미랑 춤이 이루어진다. 도입부 영상과 연속성을 가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에너지를 한껏 살린 춤이 전개된다.

눈 오는 겨울, 혼자 빈 벤치에 덩그러니 앉아 자신의 잘못된 과거의 기억, 그 기억으로 인한 자신의 달라진 성격과 폐쇄적이고 위태로움을 보여주는 현우의 독무가 이루진다. 이어지는 은지의 독무, ‘무한-’은 그녀의 인생에서 긍정을 자아내는 에너지의 근원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무엇을 담아도 넉넉한 크기의 접두사는 현실을 환기시키며 도전정신을 불러온다.

윤주, 경미가 가세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목적지를 상실한 오리의 물장구처럼 자신을 종종 당황하게 만든다. 물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오리는 엄청난 양의 발을 움직여야 한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를 제기하며 '무한'을 즐겼던 자신에게 바다의 부표처럼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냉혹한 현실은 잠재적 가치를 함부로 수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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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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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의 왜곡, 기억편집에 관한 무용수 전체의 군무가 펼쳐진다. 개개인의 기억들은 그 존재로 남아 있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만나 그 기억을 환기시키거나 불러일으키는 트리거의 역할로 작용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이 다시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기억의 왜곡, 기억편집에 대한 인식 가능성이 제기된다.

방황하는 인간군상(카오스), 그 안에서 배신과 충돌이 일어나고 부유하고 방황하고 있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군무로 펼쳐진다. 자기반성에 이어 시원과 은지 듀엣은 인간은 스스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서로에게 치유 받으며 하나, 둘 씩 완성되어 간다. 전체 무용수들이 희망으로 가는 <기억-앙진>을 기억해낸다. <기억-앙진>의 형상인(形象因)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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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기억-앙진'

안무가 김주빈은 독창적 상상력으로 자신의 <기억-앙진>을 상상적 지식체로 만들었다. 도식적 형식을 탈피하여 도입부 영상으로 주의를 집중시키고 촘촘한 구성을 짜고 자신의 춤 심리학을 전개시키는 과감한 안무 태도를 보인다. 기교적 측면에서 우위를 보였으며, 소수적 관심을 대중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기억-앙진>은 독립안무가의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 준 작품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장석용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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