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제삼검풍(第三劍風) 고적파동(鼓笛波動)-(11) 칼의 향기
[글로벌이코노믹 박신무 소설가] 공주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호동왕자는 고구려 궁 깊은 곳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왕비는 호동왕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괘씸했다. 낙랑공주를 잊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왕비는 호동왕자를 궁으로 불러 들였다.
“왕은 너무 잔인하고, 많은 첩을 두어서 나를 실망하게 했어요. 보위에 오르게 한 나를 잊었어요. 그러니, 왕자도 낙랑을 복속시키는 중대한 공을 세웠지만, 나처럼 버림받게 될 거예요. 알겠어요? 왕은 자신보다 힘센 자를 싫어해요. 왕께서는 부왕도 내쫓고, 형제도 죽여 가며 왕위에 오른 분입니다. 하물며 왕권에 도전한다고 의심되면, 자식이라도 처단할 분이예요.”
호동왕자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왕을 꼬드겨 낙랑공주를 죽인 왕비를 어찌 믿겠는가!’
“특별히 왕자와의 정을 생각하여 큰 뜻을 같이하고자 하니, 잘 생각해 보구료. 대왕은 잦은 전쟁으로 포악해져서 왕비인 나는 물론이고 많은 대신에게 혹독한 형벌을 가하기 일쑤지요. 백성들도 왕의 포악함과 잦은 전쟁이 두려워, 나라 밖으로 도망치는 자가 많소. 형국이 이러하니, 백성을 사랑하고, 대신들을 위로해 줄 왕이 필요해요. 왕자는 고운 얼굴만큼 마음씨도 아름답고 정의로워서 병사들이 따르오. 지금은 이 나라를 굳건하게 지킬 이는 호동왕자뿐이오. 툭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왕은 물러나야 하오. 왕비와 왕실은 물론 대신들과 백성들은 그만 쉬고 싶은 거예요. 나와 손을 잡는다면 큰 일을 할 수 있어요!”
왕비는 호동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갖다 댄다. 호동은 냉정하게 뿌리치며 말한다.
“왕비께서는 마음에 안 들면, 무슨 짓이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나도 제거할 겁니다. 의리는 그런 기분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왕권이 탐이 난다고해서, 자식으로서 난 아비를 버릴 수 없습니다.”
왕비는 거절당한 노여움에 사로잡혀 말한다.
“낙랑공주를 만나더니 사람이 달라졌구나. 감히 왕비를 우롱하고도 살아남을 것 같나?”
호동왕자는 담담하게 말한다.
“지난날엔 저를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했고, 그 향기에 동하는 것이 호걸의 본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왕과 왕비는 정략적으로 결혼을 했지만, 두 분이 사랑한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왕은 저의 어미를 사랑했지만, 소국의 공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밀려나서, 대부족의 공주인 당신이 왕비가 되었지요. 한 때 힘이 쎈 왕비의 비위를 맞추려 했었습니다. 힘없이 밀려나 존재감이 없어진 어미처럼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낙랑공주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러나 낙랑공주에게서 사랑을 배웠습니다. 사랑은 필요에 의해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버리고 상대를 받드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사람을 바꾸는 거요. 전쟁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서 예민해졌나보오. 왕자에 대한 내 감정은 변함이 없어요. 내일이면 전쟁터에서 왕이 돌아오니, 오늘 밤까지는 군사를 일으켜야 해요. 모든 준비는 다 되어 있으니, 왕자가 대장군이 될 결심만 하면 되오.”
호동왕자는 칼을 뽑아 들고 상투를 베어 낸다. 배신할 수 없다는 자신의 결심을 보여 준 것이다. 왕비는 이를 보고는 일이 틀어졌음을 알았다. 만약 호동왕자가 왕에게 자신이 한 얘기를 고해 바치면 자신도 목숨을 지키기가 어려우니, 호동왕자 상투를 증거로 왕에게 호동왕자를 음해한다.
“왕이시여, 호동왕자가 감히 어미인 저를 음행하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소저가 나무랬더니, 제 성질을 못이긴 나머지 미쳐 날뛰다가 스스로 상투를 잘랐습니다. 이것은 왕비를 능멸하는 것이고, 몸을 물려준 대왕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엄한 벌로 왕실의 기강을 세워 주소서.”
마침, 혈기왕성한 대왕은 공이 드높은 호동왕자가 배신할까봐 두려운 참이었다. 왕비는 그 속마음을 알고 있기에 왕과 호동왕자의 사이를 이간질한 것이다. 대무신왕은 지는 걸 무엇보다 싫어하고, 자기보다 나은 인물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승부욕이 강한 이였다. 더구나 영토 확장에 큰 공헌을 하여 백성들에게 신망이 높은 호동왕자가 기고만장하여 감히 부왕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물증을 보니, 성격이 격정적이고 조급한 대무신왕은 깊이 생각할 여지도 없이 크게 화를 내며 명한다.
“호동왕자는 나라와 부왕, 왕실을 욕되게 한 죄로 왕실의 전통에 따라 할복할 것을 명한다.”
/글로벌이코노믹 글 박신무 그림 허은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