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MA 통해 미 국채 담보로 달러 조달…일본 시장 개입 지원
재무장관이 연준 정책 변경 공개 요구 이례적…기관 간 관계 주목
재무장관이 연준 정책 변경 공개 요구 이례적…기관 간 관계 주목
이미지 확대보기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엔화 방어에 나선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에 외국·국제통화당국(FIMA) 레포 제도 확대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레포(repo)는 ‘환매조건부채권 매매(repurchase agreement)’의 약자로 외국 통화당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담보로 연준에서 달러를 단기로 빌릴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재무부 장관이 연준의 정책 수단 변경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례적이어서 통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온 두 기관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재무부가 일본과 함께 엔화 가치를 떠받치기 위한 시장 개입에 나선 뒤 베선트 장관이 연준에 FIMA 레포 기구 확대를 주문했다고 4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 2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FIMA 레포 기구는 일본의 엔화 방어 노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수개월 안에 기구의 규모를 확대하도록 연준에 촉구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일본은 지난달 31일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매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은 향후 시장 개입 과정에서 연준의 FIMA 레포 기구를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미 국채 매각 대신 담보로 달러 조달
FIMA 레포 기구는 외국 중앙은행과 국제통화당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연준에 담보로 맡기고 단기적으로 달러를 조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외국 통화당국이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시장에 직접 매각하는 대신 연준에서 달러를 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본이 엔화를 사들이기 위해 달러가 필요할 경우 FIMA를 통해 미 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조달한 뒤 외환시장에서 해당 달러를 매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미 국채 매각이 미국 채권시장에 미칠 충격을 줄일 수 있다.
현재 FIMA 레포 기구의 이용 한도는 거래 상대방 한 곳당 하루 600억달러(약 85조7000억원)다.
거래 상대방별 한도를 확대하려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산하 외환소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소위원회는 제도 변경 계획을 FOMC에 보고해야 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 재무부와 연준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협력하는 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시기에는 두 기관이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긴밀하게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일본이 엔화 방어를 위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대량으로 매각할 경우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수익률이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FIMA 레포 기구는 이러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 연준 정책 변경 공개 요구는 이례적
시장 관계자들은 베선트 장관의 요구 내용보다 이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미 재무부와 연준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협력하면서도 통화정책과 연준의 정책 수단을 둘러싸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왔다. 재무부 장관이 연준에 특정 정책 수단의 변경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사례도 드물다는 지적이다.
미 재무부 고위 관료를 지낸 마크 소벨은 “재무장관이 연준의 통화 운용과 관련한 요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에는 이 같은 필요성이 생기더라도 재무장관이 연준 의장과 비공개로 협의해 사안을 처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울프리서치의 토빈 마커스도 “재무부가 연준과 물밑에서 협의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정책 변경을 요구한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요구는 연준이 백악관으로부터 금리 인상에 나서지 말라는 정치적 압박을 받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물가상승률이 연준의 목표인 2%를 웃돌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베선트 장관도 취임 당시에는 금리의 방향에 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금리 인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달러의 국제적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국가로 통화스와프 체결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이 같은 조치 역시 연준의 지원이 필요할 가능성이 있다.
◇ 일본 국채 매각 따른 금리 상승 차단
전문가들은 일본의 엔화 방어 개입 자체를 연준이 적극적으로 지원할지는 불확실하지만 일본이 미 국채를 매각하는 것보다는 FIMA를 활용하는 편이 미국 금융시장에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 국채를 보유한 외국 투자자다. 일본이 엔화 매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 국채 보유분을 매각하면 미국 국채 수익률에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연준에서 국제금융 부문 책임자를 지낸 스티븐 카민 미국기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을 FOMC가 지원하려 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본이 어차피 시장에 개입한다면 미 국채를 직접 매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개입하는 편이 낫다고 평가했다.
클록타워그룹의 에릭 월러스틴 수석 거시전략가는 “FIMA 레포 기구를 확대해도 연준이 부담해야 할 정치적·금융시장 위험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대출 기간이 짧고 미 국채가 담보로 제공되는 데다 차입자가 이자도 지급하기 때문에 연준이 손실을 볼 위험이 낮다는 설명이다.
베선트 장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일본은 미 국채를 대규모로 처분하지 않고도 엔화 방어에 필요한 달러를 조달할 여력이 커질 전망이다.
다만 재무부 장관이 연준의 권한에 속하는 제도 변경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는 점에서 FIMA 확대 여부뿐 아니라 재무부와 연준의 관계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