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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칩의 부활… 애플 ‘비닝’ 전략, 반도체 공급망 재편 신호탄

보급형 기기에 결함 프로세서 퓨즈 차단 후 재활용… 수율 한계 넘는 새 방정식 제시
TSMC 첨단 공정 캐파 경쟁 심화 속 국내 테스트 소부장·OSAT 반사이익 집중 조명
애플이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함 프로세서를 하위 라인업에 재활용하는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화하며 글로벌 공급망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애플이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함 프로세서를 하위 라인업에 재활용하는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화하며 글로벌 공급망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애플이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함 프로세서를 하위 라인업에 재활용하는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화하며 글로벌 공급망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7(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애플이 초미세 공정의 수율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코어에 결함이 있는 프로세서를 폐기하지 않고, 하위 기기에 전략적으로 탑재해 막대한 마진을 거두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시장에서 주목받는 599달러(893700)짜리 가칭 보급형 맥북 라인업이 대표적인 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기기에는 최고급 스마트폰에 쓰이던 ‘A18 프로등 모바일용 AP 칩셋이 탑재됐으나, 그래픽처리장치(GPU) 코어 중 결함이 발생한 일부 코어를 차단한 5코어 버전이 변형 적용됐다.

이러한 반도체 비닝(Binning)’ 전략은 △다이 레벨 원가 절감을 통한 ASP(평균판매단가) 방어 △첨단 파운드리 의존도 심화 △보급형 기기로 확보한 신규 사용자를 자사 플랫폼 서비스로 집중하도록 하는 마케팅 효과 등 세 가지 핵심 변화를 몰고 온다.

레이저로 결함 차단… 수율 한계 뚫은 디스에이블혁신


반도체 웨이퍼 가공 공정은 나노 단위로 초미세화될수록 회로 결함에 따른 불량률이 치솟는 기술적 한계를 지닌다. 애플은 완전품 규격에 미치지 못하는 칩을 폐기하는 대신, 물리적 회로를 끊어 불량 코어만 도려내고 정상 회로를 살리는 비닝의 핵심 공정 방식을 택했다. 성능 상한선은 일부 제어되지만, 연산의 안정성은 완벽히 유지되므로 보급형 제품군을 구동하기에는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닝 전략은 파운드리 제조 원가를 낮추는 동시에 고가 제품군의 가격대를 유지하면서도 하위 라인업의 마진까지 극대화하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쟁사들이 중저가 제품군에서 수익성 악화를 겪을 때, 애플은 버려지는 자원을 무기화해 독점적 마진 구조를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애플은 A15 바이오닉부터 최근 A19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총 6종의 프로세서에 이 비닝 공정을 수술적으로 대입하며 전방위적인 이익 방어선을 구축했다.

테스트 타임 급증… 한국 반도체 후공정 소부장 직접 수혜


보급형 기기의 출하량 증가는 국내 메모리 반도체 및 후공정 생태계에 직접적인 대형 호재다. 프로세서가 비닝 칩이라 하더라도 이와 연동되는 저전력 고대역폭 메모리(LPDDR5X)와 고성능 낸드플래시 등 핵심 부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부터 신규 공급되어야 하므로 물량 증대로 직결된다.

특히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를 담당하는 국내 OSAT(반도체 후공정 외주업체)와 검사 소부장 기업들의 수혜 궤적이 뚜렷하다. 고성능·저전력 칩의 비닝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칩을 성상별로 분류하고 결함 유무를 가려내기 위한 '테스트 커버리지'가 대폭 확대된다.

국내 반도체 테스트 장비업체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결함 코어를 선별해 차단하는 공정이 추가되면 테스트 타임(Test Time)이 대폭 늘어나 ISC 같은 반도체 테스트 소켓 전문 기업의 소모품 교체 주기가 빨라지고, 하나마이크론 등 OSAT 기업들의 검사 장비 가동률이 상승해 실적 호전의 강력한 추진력이 된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와 생산 능력 전쟁… TSMC 첨단 공정 병목 리스크


다만 보급형 제품의 과도한 인기가 도리어 애플의 공급망을 압박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의 밍치궈 연구원은 애플이 예상치를 뛰어넘는 보급형 기기 수요를 맞추기 위해 TSMC에 추가 웨이퍼를 주문하면서, 기존 최고급 프리미엄 칩 생산 라인과 동선이 겹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TSMC의 최첨단 3나노(N3) 2나노(N2) 공정 캐파(생산능력)는 글로벌 빅테크들의 인공지능(AI) 가속기 주문까지 밀려 있어 극심한 포화 상태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과 AMD의 주문 물량이 TSMC 최우선순위 자리를 두고 애플과 격렬한 위탁생산 점유를 위한 경쟁을 벌이는 구도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역시 최근 실적 발표에서 첨단 파운드리 병목으로 인한 공급 부족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음을 시인했다. 단기적으로는 이익률을 올리던 비닝 전략이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캐파 경쟁 속에서 위탁생산 병목을 심화시키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3가지 지표


글로벌 IT 및 반도체 투자자들은 향후 시장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요소를 지표로 삼아야 한다.

첫째, TSMC N3·N2 공정 내 애플 대 AI 가속기 점유율이다. 엔비디아 등 AI 빅테크와 캐파 확보 경쟁 구도 속에서 애플의 주문 물량이 적기에 배정되는지 여부가 실적의 향방을 가른다.

둘째, 국내 후공정 테스트 소켓 및 장비사의 가동률 추이다. 비닝 세분화로 인해 증가한 테스트 타임이 실제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률 상승으로 연결되는지 검증해야 한다.

셋째, 모바일 LPDDR5X 메모리의 분기별 고정거래가격 변동이다. 애플의 보급형 라인업 공세가 국내 메모리 제조사의 판가 상승을 견인하며 실적 개선 촉매제로 작용하는지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제조업의 기술적 실패작으로 분류되던 불량 반도체가 고도의 하드웨어 제어 기술 및 마케팅 설계와 결합하면서, 빅테크 기업의 강력한 고수익 모델로 탈바꿈하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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