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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미국 CPI 물가 폭탄... 뉴욕증시 채권왕 핌코(Pimco)의 배신

베어 스티프닝(Bear Steepening) 빌 그로스(Bill Gross)
미국 CPI 소비자물가 추이/ 자료=미국 노동부 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CPI 소비자물가 추이/ 자료=미국 노동부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 전 고려대 교수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 CPI가 크게 오르고 있 는가운데 뉴욕 증시의 심장부에서 기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향해 "당장 금리를 내려 시장에 숨통을 틔워라"며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PIMCO)가 돌연 태도를 바꿨다. 불과 얼마 전까지 금리 인하의 당위성을 설파하던 그들이 이제는 "성급한 금리 인하가 오히려 시장을 파괴하는 독이 될 것"이라며 전례 없는 경고를 쏟아내고 나선 것이다.금리 인하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던 채권 거물마저 '인하의 공포'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단순히 한 운용사의 전략 수정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한 경제적 진실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알리는 서막이다.

핌코(PIMCO)의 영문 풀네임은 Pacific Investment Management Company이다. 전 세계 금융 시장, 특히 채권 시장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채권 전문 자산운용사이다. 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에서 설립된 이래, 채권 투자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꾼 곳으로 평가받는다. 핌코를 논할 때 창립자 중 한 명인 빌 그로스(Bill Gross)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채권 투자가 단순히 이자(쿠폰) 수익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을 때, 핌코는 채권의 가격 변동을 이용한 자본 차익까지 노리는 ‘토털 리턴(Total Return)’ 전략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채권 시장에서도 주식 못지않은 공격적인 수익률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다. 빌 그로스는 오랫동안 ‘채권왕’이라는 칭호를 유지하며 시장을 지배했다.

핌코는 2000년 독일의 세계적인 보험사인 알리안츠(Allianz) 그룹에 인수되었다. 현재는 알리안츠 산하의 독립적인 자산운용사로서 운영되고 있으며, 모기업의 강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기관 투자자와 개인 투자자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력
핌코의 운용 자산(AUM)은 약 2조 달러에 달한다. 이들의 자금 흐름은 곧 글로벌 금리의 향방을 결정짓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핌코의 매년 정례 회의인 '시클리컬 포럼(Cyclical Forum)'에서 발표되는 거시 경제 전망은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 관계자들과 글로벌 펀드 매니저들이 반드시 참고하는 금융 시장의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핌코는 세계 경제의 거대한 흐름을 분석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과 개별 채권의 신용도를 분석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을 정교하게 결합한다. 특히 3~5년 단위의 장기 경제 전망인 '세속적 전망(Secular Outlook)'을 통해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예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의 핌코는 빌 그로스 퇴임 이후 다니엘 이바신(Daniel Ivascyn) 그룹 투자최고책임자(CIO) 체제하에서 여전히 채권 시장의 종가(宗家) 자리를 지키고 있다.글로벌 경제 위기나 금리 변동기에 핌코의 보고서 한 장이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워시(Kevin Warsh) 내정자를 앞세워 연준의 독립성을 흔들고 강력한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핌코의 변심은 우리에게 '인플레이션 시대의 역설'을 직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 핌코가 돌아선 이유: '금리 인하의 역설'그동안 시장은 금리 인하를 경기 부양의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왔다.

핌코는 그러나 현재의 공급망 불안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금리 인하가 초래할 '파멸적 경로'를 읽어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학의 고전적 논리를 뛰어넘는 '금리 인하의 역설'을 목도하게 된다.일반적으로 기준금리(단기금리)를 내리면 시중 금리가 하락해 경기가 부양되어야 한다. 그렇치만 물가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금리 인하는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폭발시킨다. 투자자들은 미래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장기 채권을 투매하게 되고, 이는 10년물 등 장기 국채 금리의 수직 상승으로 이어진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물가때문에 장기 금리는 오히려 치솟는 현상을 뉴욕증시에서는 흔히 '베어 스티프닝(Bear Steepening)'이라고 한다ㅑ.

베어스티프닝속에서는 기업의 설비 투자 비용과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더 올라간다. 금리를 내렸음에도 실질적인 시중 금리는 더 오르는 역설적 상황, 즉 '금리 인하의 저주'가 실물 경제를 덮치게 되는 것이다.2. 케빈 워시의 등판과 트럼프의 '위험한 압박'이런 위태로운 시점에 연준의 수장이 될 케빈 워시의 어깨는 무겁다. 그의 취임을 앞두고 제기되는 '꼭두각시 논란'은 예사롭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저금리를 통한 자국 우선주의 경제 성장을 위해 연준을 백악관의 산하기관처럼 취급하려 한다.중앙은행의 생명은 신뢰(Credibility)와 독립성이다. 만약 워시 체제의 연준이 정치적 압력에 밀려 핌코가 경고한 '성급한 피벗'을 단행한다면, 시장은 이를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연준이 백기를 든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는 화폐 가치에 대한 믿음을 붕괴시키고, 달러 패권의 근간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 증시는 코스피 폭발 속에 사상 초유의 기록을 경신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초격차' 전략이 빛을 발하며 수출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이 화려한 지표 이면에는 미국의 통화 정책 변화에 따른 거대한 유동성 폭탄이 매설되어 있다.미국 연준이 정치적 논리에 휘말려 금리를 인하하고, 그 결과로 미국의 장기 금리가 폭등하며 달러 가치가 요동친다면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자본 유출 압력은 극대화될 것이며, 고물가와 고금리가 공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1970년대 아서 번즈 의장 시절의 연준은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금리를 조기에 내렸다가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대가를 치렀다. 이후 등장한 폴 볼커가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리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서야 겨우 물가를 잡을 수 있었다.케빈 워시는 이 잔혹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트럼프의 요구는 단기적인 경기 지표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언정, 미국 경제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장기적 안정성을 파괴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제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금리 인하는 시장의 신뢰를 붕괴시키고, 더 큰 폭등과 더 깊은 불황을 부르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핌코의 변심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시장을 가장 잘 아는 집단이 '금리 인하'라는 당장의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고 '긴축과 안정'이라는 쓴 약을 택했다는 점이다. 케빈 워시 체제의 연준 앞에 놓인 진정한 과제 역시 정치적 외풍을 차단하고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다.금리인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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