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이란 간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란이 선박 통과에 최대 200만 달러(약 29억7000만 원)의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국제 해상 질서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란의 통행료 부과 시도가 수세기 이어진 해상 자유 항행 원칙과 충돌하며 글로벌 무역과 에너지 공급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미국과 이란 간 2주간의 불안정한 휴전 합의 이후 제기됐으며 전쟁 기간 동안 사실상 해협을 통제해온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일부 선박의 통과를 제한적으로 허용해온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 ‘자유 항행 원칙’ vs ‘통제권 주장’…법적 충돌
그러나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을 근거로 선박 통과를 관리하고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해운·법률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가 국제법상 위법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영국 로펌 왓슨·팔리·윌리엄스의 앤드루 리그든 그린 파트너는 “국제 수로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하며 위법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스탄불 해운 분석업체 보스포루스 옵서버의 요루크 이시크는 “자연 해협에서는 통행료를 부과할 수 없다”며 “이 같은 조치는 수세기 해상법 질서를 뒤흔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역사 속 ‘해협 과금’…덴마크·오스만 사례와 비교
FT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해협 통행료는 존재해 왔다.
18세기 오스만제국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했고 덴마크 역시 15세기부터 외레순 해협에서 화물 가치의 1~5%를 징수했다.
당시 덴마크는 이 제도로 상당한 재정을 확보했지만 미국과 영국의 반발로 1857년 국제 협정을 통해 폐지됐다.
이와 달리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는 국가 영토를 관통하는 인공 수로로 국제 협약에 따라 통행료 부과가 허용된다.
수에즈 운하는 2023년 기준 103억 달러(약 15조2955억 원)의 통행료 수입을 올린 바 있다.
◇ 호르무즈 해협 ‘과금 모델’ 현실화 가능성
시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이 통행료 체계로 전환될 경우 연간 50억~80억 달러(약 7조4250억 원~11조8800억 원)의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는 이란뿐 아니라 해협 남쪽을 공유하는 오만과의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등 현실적 제약이 크다.
또 현재 이란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자국 군사력에 의한 안전 보장에 불과해 국제사회가 이를 정당한 통행료로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핵심 변수’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가스 수송의 20% 이상이 지나가는 핵심 통로다.
전쟁 이후 해협이 부분적으로 봉쇄되면서 이미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큰 충격이 발생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통행료 부과 시도가 현실화될 경우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시장과 국제 무역 질서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엑서터대 해양사학자인 헬렌 도 교수는 “이 같은 전략적 해협에서는 역사적으로도 항상 충돌이 존재해왔다”고 말했다.
◇ 미국·서방 반발…협상 쟁점 부상
미국과 서방국가, 해운업계는 이란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제유조선주협회 인터탱코의 필립 벨처 해양 담당 이사는 “통행료 부과는 국제법과 맞지 않으며 반대한다”며 “파키스탄 협상에서 이런 문제가 논의되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말했다고 FT는 전했다.
미국과 이란은 해협 통과 권한과 국제법 적용을 두고 오랜 입장 차이를 보여왔으며 이번 통행료 문제 역시 향후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