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전쟁 여파로 중단된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운항을 재개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보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 업계와 금융권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에너지·보험 업계 전문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유조선 보험 지원 계획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보험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뒤 중동 전쟁이 확전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 운항이 급감한 데 따른 조치다.
트럼프의 보험 제공과 해군 호위 가능성 언급은 초기에는 에너지 시장의 불안을 다소 완화하는 효과를 냈다. 그러나 월가와 런던 금융가에서는 실제로 이 계획을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 보험 필요액 3520억 달러…“정부 자금 부족”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의 분석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서 운항하는 유조선 329척을 보장하려면 약 3520억 달러(약 508조6000억 원) 규모의 보험 보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DFC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은 약 1540억 달러(약 222조500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JP모건의 나타샤 카네바 에너지 분석가는 “각 선박은 대형 사고 발생 시 유류 오염, 구조, 선체 손상, 제3자 책임 등에 대한 보험이 필요하다”며 “민간 보험시장이 현재 제공하지 않는 최대 약 3520억 달러 수준의 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이란발 중동 전쟁이 격화되면서 민간 보험사들은 선주들에게 기존 보험 계약을 취소하거나 보험료를 크게 인상하겠다고 통보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들도 DFC가 실제 위험 규모를 감당할 만큼 재무 여력이 충분한지, 또 단기간에 유조선 보험을 제공할 만큼 준비돼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런던 보험시장에 자문을 제공하는 정치리스크 컨설팅 업체 엔메테나 어드바이저리의 설립자 막시밀리안 헤스는 “DFC는 단기 위험을 인수하도록 설계된 기관이 아니고 이런 사업 경험도 없다”며 “재보험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수 있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 전쟁 여파로 운항 급감…에너지 시장 불안
JP모건에 따르면 DFC는 오는 2031년까지 총 2050억 달러(약 296조2000억 원)의 책임 한도를 가질 수 있는데 지난해 말 기준 이미 515억 달러(약 74조4000억 원)를 사용한 상태다. 한도를 늘리려면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 같은 제약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꺼리는 선사들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약 2000만배럴의 원유가 통과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 중 하나로 전 세계 석유 수요의 약 5분의 1이 이 해협을 통해 이동한다.
전쟁이 시작된 지난 주말 이후 미국 원유 가격은 약 20% 급등해 2024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휘발유 가격도 빠르게 상승하면서 물가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DFC와 미 재무부가 보험사들과 협의하며 걸프 해역 해상 상황에 대해 광범위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JP모건의 분석이 “필요한 보험 규모와 DFC 보험 구조에 대해 잘못된 가정에 기반한 것”이라며 “행정부는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 선박 공격 잇따라…보험료 최대 12배 급등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 선주들은 운항을 꺼리는 상황이다. 지난 2일부터 최소 8척의 상선이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부분이 유조선이었다.
미국 상장 해운회사 시너지 마리타임의 스타마티스 차난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업계의 우선 과제는 화물 운송뿐 아니라 선원 생명과 선박 가치 보호, 그리고 좁은 해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환경 재난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에너지 특별보좌관을 지낸 아모스 호흐스타인은 선박 보험 제공이 DFC의 일반적인 역할을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현재 투자회사 TWG 글로벌의 공동대표인 그는 “이 보험 계약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며 “유조선이 몇 척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 이후 보험 취소와 보험료 급등이 이어지면서 해운업계의 혼란은 커지고 있다. 일부 선박은 기존 보험보다 몇 배 높은 가격에 새로운 보험을 확보했지만 보험 취소가 잇따르면서 걸프 해역 운항은 크게 줄었다.
이번 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유조선은 약 40척에 불과했다. 이는 평상시 운항 규모에 비해 극히 적은 수준이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최근 수년 사이 최고 수준까지 약 50% 상승했고 국제 원유 기준가격인 브렌트유는 5일 배럴당 약 85.17달러(약 12만3000원)로 올라 지난주 금요일 이후 약 17% 상승했다.
로이즈시장협회에 따르면 현재 걸프 해역과 주변 수역에는 약 1000척의 선박이 있으며 이 중 절반 정도가 석유와 가스를 운송하는 유조선이다.
선박 자체의 보험 가치만 합쳐도 약 250억달러(약 3조6100억원)를 넘는다. 여기에 선박이 실은 원유와 가스 화물 가치까지 더하면 위험 규모는 훨씬 커진다.
워싱턴의 에너지 컨설팅 회사 라피단 에너지의 창립자 밥 맥널리는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운항이 정상화되려면 이란의 해상 공격 능력이 실제로 억제됐다는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보험료는 계속 매우 비싸게 유지될 것이고 선원들도 안전 문제 때문에 해협 통과를 꺼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