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주도 자본주의 수용한 트럼프, 희토류 17종 등 핵심 광물 비축량 대폭 확대
민관 합동 투자로 공급망 독립 가속…글로벌 자원 패러다임 ‘시장’서 ‘안보’로 전격 전환
민관 합동 투자로 공급망 독립 가속…글로벌 자원 패러다임 ‘시장’서 ‘안보’로 전격 전환
이미지 확대보기지난 3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메리 바라 제너럴 모터스(GM) 최고경영자(CEO), 로버트 프리드랜드, 더그 버검 등 산업계 인사들과 만나 미국의 전략적 핵심 광물 비축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계획은 과거 시장 자본주의 원칙에서 벗어나 국가가 직접 공급망에 개입하는 중국식 국가 주도 모델을 차용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은 이를 통해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 원자재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제조 강국 입지를 굳힌다는 구상이다.
정부 자금 14.5조 원 투입…민관 합동 ‘자원 방어벽’ 구축
미국의 새로운 광물 전략은 정부가 시장에 깊숙이 개입해 자금을 대고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을 취한다. 프로젝트 볼트의 총예산 120억 달러 중 83%에 달하는 100억 달러(약 14조 5600억 원)는 미국 수출입은행이 대출 형태로 제공하며, 나머지 20억 달러(약 2조9100억 원)는 민간 자본으로 채울 예정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단순히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핵심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는 등 ‘국가 주도 자본주의’ 모델을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대 16억 달러(약 2조3200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USA 레어 어스(USA Rare Earth) 해당 주식 일부를 확보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제조사 인텔(Intel)의 지분 10%를 인수했으며, 일본 제철의 미국 철강(US Steel) 인수 과정에서도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는 ‘황금주’를 확보했다.
모건 바질리안 콜로라도 광산대학 페인 연구소 소장은 WSJ에 "이는 미국이 자원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완전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석유 비축 넘어 광물로…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맞대응
이번 프로젝트의 명칭인 ‘전략적 중요 광물 비축량(Strategic Critical Minerals Reserve)’은 1970년대 오일 쇼크에 대비해 구축한 ‘전략 석유 비축량(SPR)’에서 착안했다. 미국은 전국 안전 시설에 17종의 희토류를 포함한 수십 가지 핵심 광물을 보관하여 중국의 공급 차단 위협에 대비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희토류 가공 기술과 물량을 내세워 무역 양보를 압박한 바 있다. 특히 지난 봄 중국이 희토류 자석 수출을 줄이자 포드(Ford)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공장을 일시 폐쇄하는 등 타격을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우리는 1년 전 겪었던 일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원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공 기술 부족과 급변하는 산업 수요가 걸림돌
다만 전문가들은 석유와 달리 광물 비축은 기술적 난도가 훨씬 높다고 지적한다. 석유는 원유 상태로 장기 보관이 용이하지만, 광물은 정제 및 가공 단계에 따라 활용도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희토류 중금속의 경우 중국 외에는 가공 능력이 턱없이 부족해 현재 건설 중인 공장들이 완공되더라도 향후 몇 년간은 미국과 동맹국 수요의 일부만 충족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술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빨라 희토류 자석과 같은 완제품을 비축할 경우, 자동차나 항공기의 설계 사양이 바뀌면 비축 물자가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있다. 이에 싱가포르의 희토류 분석가 토마스 크루머는 "비상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보호막을 구축하는 데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부담 속에서도 공급망 다변화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이 독점하던 갈륨 가공의 경우, 일본·미국·호주 정부의 지원을 받은 새로운 공장이 오는 연말 호주에서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존 요바노비치 수출입은행 총재는 "이번 비축 사업이 국내 가공 산업을 지원하고 미국 제조업체를 공급 충격에서 보호하는 핵심 기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자원 동맹’ 강화 기회이나 공급망 비용 상승은 ‘양날의 검’
미국의 ‘프로젝트 볼트’는 한국 핵심 광물 공급망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미국 주도의 공급망 다변화가 가속화하며 한국 배터리·반도체 업계가 직면한 과도한 대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안보 우산’이 마련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90%가 넘는 리튬·흑연 등 핵심 광물의 대중 의존도를 2030년까지 50%대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반면, 시장 논리가 아닌 국가 주도 안보 논리로 자원 시장이 재편되면서 원가 상승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G7 차원의 ‘가격 하한선’ 도입과 정부 주도 비축 사업은 자원 가격의 하방 경직성을 강화해 한국 기업의 제조 원가 부담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미국 국방부가 캐나다 등 북미권 광산에 직접 투자하며 수급 우선권을 확보할 경우, 자금력이 부족한 국내 소재 업체들은 물량 확보 경쟁에서 후순위로 밀릴 우려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비축 시스템과 연계한 ‘공동 비축제’를 논의하는 동시에, 핵심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급망 교섭력을 높여야 한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가장 싼 광물’을 찾는 것이 경쟁력이었으나, 이제는 ‘비싸더라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 실력이 된 시대다. 한국은 미국의 비축 시스템에 단순히 편승하는 것을 넘어, 한·미·호주·캐나다를 잇는 다각적인 자원 외교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해야 하는 시점 앞에 서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