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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트럼프 행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더 위험해졌는가

‘문명 우위’로 갈아탄 미국의 글로벌 패권 전략과 자유주의 동맹 진영과 한국의 안보에 드리우는 구조적 위험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지난 12월4일 트럼프 대통령(사진)이 승인한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지난 12월4일 트럼프 대통령(사진)이 승인한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했다. 사진=로이터

트럼프 미 행정부가 12월 4일 공개한 2025년판 국가안보전략(NSS)을 두고 워싱턴에 소재한 미국의 비영리 초당파 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스팀슨센터(Stimson Center)의 12명 전문가들이 쏟아낸 평가는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꿈꾸는 것은 여전히 ‘다른 방식의 패권’이며, 그 비용과 위험은 동맹과 주변국에게 더 크게 전가될 것이라는 냉정한 진단이다.

스팀슨센터가 발표한 12명 전문가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본지는 이들 평가를 열 가지 핵심 의제로 종합해, 미국 중심 자유주의 진영과 미중 전략 경쟁, 그리고 한국의 안보와 국익에 어떤 구조적 변화가 다가오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비간섭을 말하지만, ‘예외’로 가득 찬 주권론


NSS는 먼저 “모든 국가는 각자의 이익을 우선할 권리가 있다”며 주권과 비간섭을 강조한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곳곳을 ‘민주화 프로젝트’로 뒤흔들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에서 전략은 이렇게 말한다. 비간섭에 ‘엄격히 매일 수는 없으며’, 필요할 경우 개입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다.

서류상으로는 유엔 헌장의 주권 평등과 비간섭 원칙을 찬양하지만, 실제 운영 매뉴얼에는 서방 반대 정권이나 ‘문명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보는 국가’에 대한 개입 옵션을 그대로 남겨둔다. 서유럽의 정권 교체를 돕는 “애국적 정당 지원” 발언, 서반구에서의 “트럼프판 먼로 독트린”이 모두 여기에 들어간다.

형식은 현실주의적 ‘국익 우선’에 가깝지만, 실제 내용은 언제든지 가치와 이념, 국내 정치 선호를 이유로 비간섭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는 구조다. 이는 미국의 전략적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동맹과 경쟁국 모두에게 “어디까지가 레드라인인가”라는 새로운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자유주의 패권에서 ‘문명 패권’으로의 전환


이번 NSS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이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인권 같은 보편 규범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유럽을 향해 “문명적 소멸”, “이민과 저출산이 가져온 문명의 위기”를 거론하며, 유럽 내부의 우파·극우 세력에 노골적으로 힘을 실어주겠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과거의 자유주의 패권이 “민주주의를 위해 개입한다”고 주장했다면, 이번 전략은 “서구 문명을 지키기 위해 개입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리버럴 프라이머시에서 ‘문명 프라이머시’로 간판만 바꿔 단 셈이다.

문제는, 문명을 안보 개념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동맹국의 이민 정책, 사회 통합, 언론 규제, 심지어 문화 정책까지 미국의 안보 이해와 직결된 영역으로 편입된다는 점이다. 유럽의 이민 정책을 안보 의제로 올려 “저출산과 다문화 정책이 문명을 약화한다”고 규정하는 순간, 미국은 동맹의 국내 정치에 상시 개입할 명분을 갖게 된다.

이것은 자유주의 진영 내부의 정치 지형을 바꾸려는 장기전이기도 하다. 미국 국내에서 ‘MAGA’ 세력이 주도권을 쥔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유사한 정치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돕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서반구로의 피벗, 아시아·유럽에는 조건부 방위만 남는다

라틴아메리카는 늘 NSS에서 몇 줄로 언급되는 변두리였다. 그러나 이번 전략에서는 서반구가 아시아, 유럽, 중동보다 앞에 등장한다. 목표도 추상적인 “협력 증진”이 아니라 노골적인 “미국의 우월성 회복”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트럼프판 먼로 독트린’이라 부르며, 중국·러시아·이란 등 경쟁국의 영향력을 서반구에서 밀어내겠다고 선언한다. 그 수단으로는 개발금융, 공급망 재편, 관세와 제재, 군사 협력을 총동원한다.

문제는, 미국이 서반구에 우선순위를 두는 만큼, 유럽과 인도·태평양에는 이전과 다른 메시지가 간다. “미국이 언제나, 어디서나, 같은 수준으로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며, 각 지역은 스스로의 방어를 책임지라.”

이는 유럽에게는 나토 5퍼센트 국방비 목표와 자체 재래식 전력·방산기반 재건이라는 막대한 부담으로 돌아오고, 인도·태평양 동맹국들에게는 “중국 견제의 1차 책임은 당신들”이라는 부담 전가로 이어진다.

인도·태평양: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질 우선순위는 아닌 지역


문서 곳곳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 언급되지만,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실질 우선순위는 낮아져 있다.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명시하던 과거와 달리, 이번 전략은 중국을 이름으로 직접 지목하는 대신, 경제·기술·공급망 경쟁의 언어로 우회한다.

한편으로는 동맹의 방위비와 군사적 부담을 대폭 확대하라고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국의 관세·수출통제 정책으로 동맹의 경제·기술 기반을 약화시키는 자기모순도 드러난다. 인도, 동남아, 남아시아에 대한 서술은 현저히 빈약하며, 남중국해 이남의 회색지대 갈등, 남아시아 핵위기 같은 핵심 변수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아시아 동맹국 입장에서 보면, 이번에 발표된 미 NSS는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위기 시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어느 속도로 개입할지에 대한 신뢰를 훨씬 더 불투명하게 만든다.

유럽: 재무장 요구와 ‘문화 전쟁’ 수출이라는 위험한 조합


유럽에 대한 메시지는 거칠고 양가(兩價)적이다. 한쪽에서는 방위비 5퍼센트, 러시아에 맞선 재래식·핵 억지, 산업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유럽연합을 “주권을 갉아먹는 초국가 기구”로 규정하고, 현 집권 세력을 “문명적 자살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비판하며, “유럽 내부의 저항세력 육성”을 공언한다.

동맹의 재무장과 동맹의 정치적 분열을 동시에 추구하는 셈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두 가지 결과를 낳을 위험이 크다. 하나는 자유주의 진영의 정치적 분열과 극단주의 부상, 또 하나는 방위 협력의 제도적 기반인 EU·나토의 기능 약화다.

유럽이 스스로의 방어를 강화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문제의식은 타당하지만, 그 방어를 떠받칠 정치·경제 구조를 동시에 흔드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러시아와 극단주의 세력에게 전략적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를 말하지만, 외교 인프라는 스스로 무너뜨리는 전략


이번 NSS는 과거의 국가안보전략들보다 외교와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더 자주 언급한다. 대통령의 “비전통적 외교”를 강조하고, 군사 개입을 자제하면서 협상과 중재를 늘리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무부 예산 삭감, USAID 폐지, 외교 인력의 사기 저하와 이탈이 누적되면서, 전략이 요구하는 수준의 외교 역량은 오히려 후퇴했다. 대통령 개인의 정상외교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그 뒷받침을 해야 할 전문 외교관 네트워크는 축소되는 구조다.

군사 개입을 줄이고 외교를 늘리려면, 오히려 외교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NSS는 “외교의 중요성”이라는 수사와 “외교 역량 축소”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방치하고 있다. 그 사이의 비용과 위험은 동맹과 현장 국가들이 떠안게 된다.

무기 수출과 군사 기술: ‘최첨단’ 집착과 거래적 안보 협력


무기 수출과 안보 지원에 대한 대목은 세 군데 정도에 짧게 등장하지만, 그 함의는 크다. NSS는 동맹의 방위비 증대와 부담 전가를 강조하면서, 미국의 무기 수출을 속도와 효율 위주로 재편하겠다고 밝힌다. 동시에 기존의 인권·민주주의 연계 조건, 의회 견제라는 ‘안전장치’를 대폭 완화하려는 움직임도 병행된다.

한편으로는 군사력 현대화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군대”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하지만, 최근 수십 년의 사례는 그 약속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보여주었다. F-35, 줌월트급, 리토럴 전투함, 포드급 항모 등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야 한다”는 강박으로 추진된 사업 상당수가 비용 폭주, 성능 미달, 전력 공백으로 귀결됐다.

그럼에도 NSS는 ‘효율적이고 단순한 전력’이 아니라, 다시 “기술적 우위를 통한 압도적 군사력”을 앞세운다. 이는 미 국방예산 자체를 더욱 비대하게 만들 뿐 아니라, 동맹국들에게도 마찬가지의 고비용 구조를 강요한다.

중국의 시각: ‘이념 경쟁의 후퇴’와 ‘균형 전략’의 기회


흥미로운 점은 중국의 전략 커뮤니티가 이번 NSS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념 경쟁, 민주·권위주의 대립 같은 표현이 사라지고, 미국의 국익 범위가 축소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만에 대해서도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문구에 그친 점을 두고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상 독립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하며, 이를 ‘부분적 성과’로 본다. 미국이 “비개입 원칙과 거래적 외교”를 내세울수록, 중국은 미중 관계를 이념전이 아닌 세력균형 프레임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중국이 읽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대목도 있다. NSS는 중국을 이름으로 적시하지 않으면서도, 공급망·반도체·AI·군민융합 등에서의 기술 봉쇄와 경제 압박을 더욱 노골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이념 전쟁’ 대신 ‘경제·기술 전쟁’으로 전장을 옮긴 것일 뿐이다.

한국에 대한 메시지: ‘모범 동맹’이지만, 북핵은 사라진 문장


NSS가 한국을 직접 언급한 부분은 많지 않지만, 그 몇 줄에 이번 전략의 방향이 압축되어 있다. 대미 무역수지와 중국의 과잉 생산 흡수, 글로벌 사우스 개발 협력, 방위비와 동맹 분담 확대라는 세 가지 축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과 “비핵화”라는 표현이 이번 전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의 NSS들에서는 상수처럼 언급되던 북핵 문제를, 이번에는 전략적 우선순위 목록에서 내려놓은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이 국방비 증액, 미제 무기 도입, 글로벌 사우스 협력 확대 등을 통해 미국의 요구에 성실히 응답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 가지 묵직한 함의가 깔려 있다.

미국의 전략 지도에서 한반도의 핵문제는 더 이상 “핵심 우선순위”가 아니라, 중국 견제와 인도·태평양 세력균형이라는 더 큰 프레임 속에 편입된 여러 변수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읽어야 할 현실: 조건부 방위 시대의 동맹, 그리고 핵 옵션


이번 NSS를 12명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종합해 보면, 한 가지 흐름이 분명해진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질서 전체를 혼자 떠받치는 패권국” 역할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문명 우위와 경제·기술 패권”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 비용과 위험은 동맹과 파트너에게 훨씬 더 많이 전가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는 세 가지 구조적 질문으로 돌아온다. 첫째, 미국의 확장억지는 이제 어느 정도까지, 얼마 동안, 어떤 조건 하에서 작동할 것인가. 둘째, 북핵·중국·러시아·대만해협을 둘러싼 네 겹의 핵 그림자 속에서, 한국은 언제까지 “남이 설계한 억지 구조”에만 자신을 맡길 것인가. 셋째, 자국의 생존과 동맹의 유지, 그리고 자유주의 진영의 방어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한국은 어느 수준의 자율 억지력과 전략 자율성을 준비해야 하는가.

트럼프식 NSS는 동맹의 자율성을 위협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동맹의 자율 억지력을 요구하는 문서다. 유럽에는 재무장과 부분적 핵 옵션 논쟁을, 아시아에는 전술핵 재배치·핵 공유·독자 핵무장 논쟁을 자극한다.

한국이 이 전략 문서를 읽어야 하는 방식도 분명하다. 미국이 언제까지, 어떤 형태로, 어느 수준까지 우리를 지켜줄지를 막연히 믿는 문서가 아니라, 미국이 어디까지를 “미국의 국익”이라고 선을 긋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확인한 뒤, 그 빈 자리를 어떤 방식의 군사력, 어떤 수준의 핵 옵션, 어떤 형태의 동맹 재설계로 메울 것인지를 계산해야 하는 출발점이다.

이번에 발표된 NSS는 미국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문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이 더 이상 과거식 안보 관성에 머물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경고장이기도 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미국을 비판하는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달라진 미국과 깨진 자유주의 패권 구조 속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과 자체 핵무장이라는 독자 억지력 옵션을 다시 쓰는 냉정한 전략 언어일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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