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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美 보조금 받으면 中 장비 10년 퇴출"…삼성·TSMC에 날아온 족쇄

美 의회 '칩 장비법' 발의…"적국 장비 원천 봉쇄"
해외 공장은 예외 '숨통'…中 자립만 돕는 '제재의 역설' 우려도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미국 의회가 자국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을 수령하는 기업에 대해 향후 10년간 중국산 장비 구매를 전면 금지하는 초강력 규제안을 꺼내 들었다. 미국 내 공급망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미국 납세자의 세금이 중국의 '기술 굴기'로 흘러 들어가는 파이프라인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선전포고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고강도 제재가 도리어 미국 장비 업계를 위축시키고 중국의 기술 독자 생존을 앞당기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경고음도 나온다.

"美 혈세로 적 키울 순 없다"


21일(현지시각)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미 하원의 조 로프그렌(Zoe Lofgren), 제이 오버놀티(Jay Obernolte) 의원은 이른바 '칩 장비법(Chip EQUIP Act)'을 공동 발의하며 대중국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상원에서도 마크 켈리(Mark Kelly) 의원 등이 오는 12월 동반 입법을 예고하며 초당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법안의 골자는 간명하다. 미 정부의 보조금 수혜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은 물론 이란, 러시아, 북한 등 '우려 대상국(entities of concern)'이 제조한 반도체 장비를 일절 구매할 수 없다.

규제의 그물망은 촘촘하다. 웨이퍼 처리를 위한 일반 기계부터 첨단 노광(lithography) 장비까지 반도체 제조 하드웨어 전반을 아우른다. 로프그렌 의원은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위해 투입된 연방 자금이 중국 장비 산업을 육성하는 보조금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입법 취지를 강조했다. 켈리 상원의원 역시 "미국 시설 내 중국산 장비 도입은 경쟁국에 생산 교란의 빌미를 제공하고 기술적 우위를 헌납하는 꼴"이라며 안보 위협을 직격했다. 다만 법안은 미국이나 동맹국에서 대체 장비를 구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한해 '면제(waiver)'를 허용하는 조항을 둬 최소한의 퇴로를 열어뒀다.

삼성·TSMC, 해외 공장은 '예외'


2022년 발효된 반도체법은 미국 내 설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390억 달러(약 57조 원) 규모의 보조금을 배정했다. 인텔과 더불어 삼성전자, TSMC 등 글로벌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들이 이 자금의 핵심 수혜자다.

업계가 안도하는 대목은 규제의 '지리적 한계'다. 이번 법안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장비'에만 족쇄를 채운다. 삼성전자나 TSMC가 미국 본토 밖, 즉 아시아나 유럽 등 해외 사업장에서 운영하는 생산 라인에는 이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미국 외 지역에서의 장비 조달과 생산 전략에 있어 운신의 폭을 확보한 셈이다.

美 장비사 울 때, 中 나우라는 '독주'


문제는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이 좁혀질수록 시장의 '역설'이 심화한다는 점이다. 미국 장비 기업들은 매출 절벽에 직면한 반면,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 아래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최대 장비 기업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는 최근 실적 전망에서 "미국의 광범위한 단속 강화가 2026 회계연도 매출을 약 6억 달러(약 8800억 원) 증발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매출의 28%를 차지했던 중국 시장이 잇단 규제로 급격히 쪼그라든 탓이다.

반면 중국 베이징 당국은 400억 달러(약 58조 원) 이상의 자금을 자국 장비 섹터에 쏟아부으며 '장비 국산화'를 독려하고 있다. 그 효과는 즉각적이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나우라 테크놀로지 그룹(Naura Technology Group)은 2023년 글로벌 장비 순위 8위에서 2024년 6위로 수직 상승했다. 글로벌 '톱 10'에 진입한 유일한 중국 기업인 나우라는 올해 40%에 육박하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도 SiCarrier, AMIES 등 중국 후발 주자들은 심자외선(DUV) 노광 시스템 등 첨단 장비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의 제재가 강해질수록 중국 고객사들이 자국 장비로 급선회(pivoting)하면서, 오히려 중국 반도체 생태계의 체력만 키워주는 형국이다. 오는 12월 상원 심의를 앞둔 '칩 장비법'이 미국 산업의 방패가 될지, 자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지 반도체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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