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플레이트 공급사 직접 선정, L10 랙 통합 조립 '확대'
"엔비디아에 밉보이면 끝"…협력사 수익성 악화·자율성 '축소'
"엔비디아에 밉보이면 끝"…협력사 수익성 악화·자율성 '축소'
이미지 확대보기엔비디아가 차세대 서버 플랫폼 '베라 루빈(Vera Rubin)'의 공급망 관리 방식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전력 소비량이 급증하고 액체 냉각(수랭)이 필수로 자리 잡으면서, 조립 공정은 물론 핵심 열 관리 부품에 대한 통제력을 직접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AI 인프라 시장의 압도적 지배자인 엔비디아의 이러한 움직임은 전체 공급망 생태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17일(현지시각)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액체 냉각의 핵심 부품인 '콜드 플레이트(Cold Plate)' 공급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쿨러 마스터(Cooler Master), 아시아 바이탈 컴포넌츠(AVC), 아우라스 테크놀로지(Auras Technology), 델타 일렉트로닉스(Delta Electronics) 등 4개사가 승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4개 기업은 모두 이와 관련한 논평을 거부했다.
엔비디아는 오랫동안 GPU 및 추가 기능 카드(add-in cards) 공급망에 대해 엄격한 감독을 시행해왔다. 이제 이러한 접근 방식을 데이터센터 인프라 전체로 확장할 태세를 갖춘 것으로 풀이된다.
'베라 루빈' 플랫폼의 경우, 엔비디아는 시스템 조립 단계를 기존의 L6(개별 부품 조립) 수준에서 L10(완제품 랙 통합) 수준으로 전환하여 전체 랙 통합(full-rack integration)에 대한 관여도를 대폭 높일 전망이다. 업계 소식통들은 이 조립 작업을 폭스콘(Foxconn), 위스트론(Wistron), 콴타(Quanta) 등 3개 ODM(제조자개발생산) 업체가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조립 공정의 변화는 콜드 플레이트 조달을 중앙 집중화하려는 계획과 동시에 진행된다. 이전까지 엔비디아 시스템의 액체 냉각 설계는 주로 쿨러 마스터와 AVC가 관리하고 다른 권장 공급업체들이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략 하에서는 엔비디아가 4개의 제조업체를 직접 선택하고 생산을 직접 조율하게 된다. 이는 엔비디아가 시스템 통합의 핵심인 열 관리 솔루션에 대해 SCM(공급망 관리)의 주도권을 완전히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설계도 바뀌는데 양산"…쥐어짜이는 협력사
엔비디아의 발 빠른 신제품 출시 일정은 이미 공급업체들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여러 공급업체 관계자들은 엔비디아가 아직 설계가 변경되는 과정에서도 신제품의 대량 생산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또한, 이전 세대 플랫폼(GB200, GB300 등)이 안정적인 전체 공정 수율을 달성하기도 전에 다음 세대 제품이 등장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 조달 중앙 집중화는 납품을 합리화하고 품질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급업체들은 엔비디아가 수요를 통합하고 가격을 직접 협상하게 되면서 수익 마진에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AI 인프라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압도적인 시장 지위를 고려할 때, 제조업체들은 사실상 참여를 거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지라고 사석에서 언급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이러한 움직임은 ODM과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 모두의 자율성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대형 CSP들은 시스템 설계 및 부품 선택에 대한 엔비디아의 통제력 확대에 대해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거에는 CSP들이 자신들의 데이터센터 환경에 맞춰 일부 사양을 변경하거나 ODM을 통해 부품을 조달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엔비디아의 직할 체제 하에서는 이러한 자율성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러 공급망 베테랑들은 현재 상황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공개적인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으로 묘사했다.
공급망 재편 본격화…"물량 늘어도 이익은 의문"
엔비디아의 새로운 접근 방식은 두 가지 주요 방향으로 공급망을 재편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집중화가 심화될 것이다. 조립 계약은 앞서 언급된 폭스콘, 위스트론, 콴타 등 소수의 ODM에 집중되고, 콜드 플레이트 생산은 3~4개의 냉각 전문업체에 집중될 수 있다. 클라우드 제공업체들 역시 대량 주문 시 엔비디아가 선택한 공급업체 목록을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가 지정한 '공식 벤더'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하는 기업들은 사실상 차세대 AI 서버 시장에서 도태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둘째, 대규모 출하량이 반드시 더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급업체들은 엔비디아의 중앙 집중식 모델 하에서 단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시스템 수준 설계에 대한 엔비디아의 통제력이 강화되면서, 과거 부품 업체들이 누렸던 개별 부품의 전략적 가치(기술적 차별성을 통한 가격 협상력)도 하락하게 된다. 일부 공급업체 관계자들은 "물량이 많아질수록 할인 폭이 커지는 경향이 있어 엔비디아의 최대 공급업체가 되는 것은 '축복이자 재앙(mixed blessing)'일 수 있다"고 농담 섞인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이러한 공급망 전략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베라 루빈' 플랫폼의 기술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베라 루빈 랙은 현재의 GB200 및 GB300 플랫폼보다 컴퓨팅 밀도와 전력 소비량이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설계는 기존의 공랭식 냉각을 위한 공간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캐비닛당 액체 냉각 부품 수는 두 배로 증가할 것이며, 이는 각 랙의 열 관련 자재 명세서(BOM) 비용 역시 두 배로 증가함을 의미한다. 기술적 난이도와 비용이 동시에 급증하는 상황에서, 엔비디아는 공급망을 직접 통제하는 것이 품질과 비용, 납기를 관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는 2026년 하반기에 베라 루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 플랫폼은 완전한 액체 냉각 AI 인프라로 나아가는 중요한 단계이다. 엔비디아의 최신 공급망 전략은 전력 밀도가 계속 상승함에 따라 품질, 비용 및 납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