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머우가 수립한 성공 공식, 웨이저자의 글로벌 확장과 충돌
'고객 신뢰'로 삼성과 차별화...'대만식 규율' 애리조나선 '부메랑'
'고객 신뢰'로 삼성과 차별화...'대만식 규율' 애리조나선 '부메랑'
이미지 확대보기하지만 이 견고했던 성공 공식이 지정학적 격변이라는 거대한 파도와 웨이저자(魏哲家) 현 회장 체제의 글로벌 영토 확장 속에서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공상시보가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장중머우가 설계한 '대만식 성공 모델'이 미국, 일본, 독일 등 이질적인 문화권에서도 통용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 것이다.
특히 '초격차' 달성을 위해 오너 중심의 신속한 톱다운(Top-down) 의사결정과 혹독한 실행 문화를 강조하는 삼성전자와의 경쟁 구도 속에서, TSMC의 독특한 리더십 철학과 문화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지신인용엄'은 TSMC의 시대를 초월한 DNA인가, 아니면 대만이라는 토양에서만 가능했던 '성공의 유물'인가.
'신뢰'와 '지혜', 삼성을 가른 결정타
장중머우의 '지(智)', 즉 지혜는 1987년 '전문 파운드리'라는 혁신적인 사업 모델을 창안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는 제품 설계를 직접 하는 '통합 반도체 제조사(IDM)' 모델을 고수하던 삼성전자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이었다. 이 지혜는 '신(信)', 즉 '절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가치관과 결합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TSMC는 고객의 지적 재산(IP)을 철저히 보호하고 오직 생산에만 집중함으로써 애플, 엔비디아, AMD 등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다. 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자체적으로 '엑시노스' 등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설계하고 스마트폰을 제조하기에, 구조적으로 애플이나 퀄컴 같은 최대 고객사와 경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양사의 시장 점유율을 가른 핵심적인 '신뢰'의 차이다.
웨이저자 현 회장 역시 이 '신뢰'의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애플과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며 TSMC의 기술 리더십을 지켜내는 '실행가'로 평가받는다.
의사결정 방식에서도 차이는 드러난다. TSMC가 다양한 부서장이 참여하는 '자본 지출 위원회' 등을 통해 집단 지성으로 리스크를 검토하는 신중한 모델을 채택했다면, 삼성전자는 총수 부재 시 투자 결정이 지연되는 등 리스크를 겪었을 만큼 강력한 오너 중심의 톱다운 방식에 의존해왔다. 이는 삼성 특유의 '속도전'을 가능케 했지만, 리더십 공백 시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약점도 내포한다.
'규율'과 '용기'의 역설, 애리조나의 '문화 충돌'
이러한 과감한 투자를 뒷받침한 것은 '엄(嚴)', 즉 엄격한 규율과 실행력이다.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팹(공장)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만 특유의 군대식 조직 문화와 고강도 노동은 TSMC의 '제조 우월성'을 상징했다.
하지만 웨이저자 체제에서 직면한 새로운 '용기'는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TSMC는 대만에 생산이 집중된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애리조나, 일본, 독일에 동시다발적인 공장 건설이라는 '지정학적 용기'를 내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TSMC 성공의 핵심이던 '엄(嚴)'의 문화가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TSMC 애리조나 공장(Fab 21)은 현지 미국인 엔지니어들과 대만 파견 관리자들 간의 극심한 문화 충돌에 휩싸여 있다.
TSMC 측이 12시간 맞교대, 주말·야간 비상 호출, 상명하복식의 경직된 관리 방식을 그대로 이식하려 하자, 현지 엔지니어들은 "비인간적인 노동 강요"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높은 이직률과 인력난으로 이어졌고, 결국 2024년 가동 예정이던 5나노 공장 양산 시점이 2025년으로 1년 이상 지연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심지어 장중머우 본인조차 과거 "미국의 칩 제조 재건 노력은 비용과 인력 문제로 실패할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과거 '인(仁)'의 가치로 2400명의 파견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던 미담과는 정반대의 현실이다. '대만식 규율'은 현지에서 '비인간적 처사'로 받아들여지며 TSMC의 글로벌 전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결국 '지신인용엄'이라는 TSMC의 성공 철학은 글로벌 무대라는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웨이저자 회장은 장중머우의 철학을 계승하는 동시에, '대만식 규율'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변혁할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삼성전자가 2나노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로 추격을 공언하는 가운데, 파운드리 전쟁의 승패는 단순한 기술력을 넘어, 이질적인 문화를 융합하고 글로벌 생산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문화적 적응력'에 달리게 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