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공장 10분 거리, 탁아·교통 편의…'입지'가 기업 불렀다
2001년 파산했던 상가, TSMC 유치와 함께 '테크 허브'로 부활
2001년 파산했던 상가, TSMC 유치와 함께 '테크 허브'로 부활
이미지 확대보기구마모토시 중심부에서 아소 방면으로 30분쯤 국도 57호선(기쿠요 바이패스)을 달리면, 이 간선도로 좌측으로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대기업 ASML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연구소나 공장이 아닌, '선리 가리노 기쿠요'라는 이름의 대형 상업시설이다.
야마다 전기, 유메 마트, 사이제리야, 스타벅스 같은 익숙한 소매점과 식당가가 즐비한 이 쇼핑몰에 ASML의 존재는 단연 이색적이다. ASML은 2023년 이곳에 입주해 고객사인 반도체 제조사들을 위한 기술 지원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ASML은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노광 장비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으로, 특히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급한다.
2024년에는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 KLA 텐코르(KLA-Tencor)까지 합류했다. 쇼핑몰이 단순한 쇼핑객을 넘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쇼핑몰이 '반도체 오피스'로…"TSMC 공장 10분 거리"
반도체 공장 생산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시스텍 이노우에'의 이가와 가즈나리 이사는 "쇼핑이나 식사에 불편함이 없고 탁아 시설까지 갖춰져 있어 편리하다. 주차 공간이 넓고 역도 가깝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한때 가수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근무했던 것으로도 알려진 이 회사는 2025년 8월, 가리노 2층에 유지보수 거점을 마련했다.
편리한 입지는 또 다른 핵심 경쟁력이다. 가리노는 JR 호히선 산리기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 한 매장 직원은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대에는 정체가 극심해 시내 중심부까지 1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철도로 통근한다"고 말했다.
기쿠요마치와 인접한 오즈마치에는 TSMC를 비롯한 반도체 산업이 집결하고 있다. 공장, 창고, 사무소 수요는 폭증하는 반면, TSMC와의 접근성 등 기업마다 세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물건은 부족하다.
가리노의 부동산 중개를 맡은 '다케다 코퍼레이션'의 다케다 마사히로 사장은 "뛰어난 입지"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TSMC 공장 주변까지 차로 10분 정도에 불과하다"며, "반도체 산업의 잇따른 입주야말로 '구마모토판 사이언스 파크' 구상의 한 페이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파산 상가에서 '테크 허브'로…경제 지형 변화의 상징
이 상업시설의 역사는 1980년대 규슈의 대형 슈퍼마켓 '고토부키야'가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고토부키야가 2001년 경영 파산을 맞은 뒤 부침을 겪다, 2021년 3월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거쳐 '선리 가리노 기쿠요'로 다시 문을 열었다.
가리노 측 담당자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재출발하는 것이라 불안감도 컸다"고 회고했다. 절묘하게도 그해 가을 TSMC의 구마모토 진출이 확정됐고, 이후 주변에 관련 기업들이 속속 들어서며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 필수인 상업 기반 시설로 자리 잡았다.
상업시설에 지자체가 일부 입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3개 사가 한곳에 입주한 것은 전국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가리노 담당자는 "수요가 있다면 입주 공간을 추가로 확보해 네 번째 반도체 기업도 유치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때 파산의 아픔을 겪었던 쇼핑몰이 반도체 기업들의 각축장이 된 현재 모습은, TSMC가 몰고 온 구마모토 경제 지형의 극적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