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지수는 지난 6월까지 6개월 동안 약 11% 하락하며 기록적인 낙폭을 기록했다.
달러화는 이후 낙폭이 제한되며 2개월여 동안 혼조세를 보였으나 투자자들은 이 같은 시장 흐름을 추세 전환이라기보다는 ‘일시적 숨 고르기’로 보고 있다.
11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은 지속적인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무역적자), 둔화하는 고용시장으로 인한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 등에 주목하면서 달러화의 약세 기조가 재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달러 약세 전망에 기반해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달러화 노출을 줄이기 위해 외환 헤지 전략을 재검토할 수 있는 점도 달러 약세 전망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인사이트 인베스트먼트의 프란체스카 포르나사리 환율 솔루션 책임자는 “달러가 여전히 하락 과정에 있으며, 더 내려갈 여지가 있다”면서 “달러 전망이 여전히 복잡하고, 상당한 변동성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달러 약세를 이끌었던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재평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기조로 인한 성장 둔화 가능성 등이 여전히 시장의 우려로 남아 있다. 특히 부진한 고용지표에 따른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 가능성은 달러의 매력을 약화시키는 주된 요인이 될 수 있다.
아문디의 파레시 우파디야 채권 및 환율 전략 총괄은 “시장이 이제 미국 경제가 얼마나 더 약화할지, 고용 시장이 얼마나 둔화할지, 그리고 그것이 연준의 통화정책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준이 다음 주 정책금리 인하를 재개하고, 연내 추가 인하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우파디야는 올해 초부터 달러 약세 전망을 유지하며 순매도 포지션을 확대해 왔고, 현재로서는 전략을 바꿀 이유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헤지 전략 ‘딜레마’
그동안 미국 경제의 상대적 우위는 글로벌 투자자들로 하여금 미국 자산에 과도하게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로이터는 지난 4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로 일부 투자자들이 달러 포지션을 줄이고 헤지 전략을 재검토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재조정은 진행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도이체방크 등에 따르면, 해외 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자산 규모는 수조 달러에 달한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뚜렷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비중을 줄이기 시작할 경우 달러 약세를 가속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우파디야는 “달러의 다음 큰 폭락은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배분을 줄이기 시작할 때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사이트 인베스트먼트의 포르나사리는 “상대적으로 늦게 대응하는 투자자들이 앞으로 3~6개월 안에 시장에 가세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 점이 달러화의 추가 하락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도이체방크의 조지 사라벨로스 글로벌 환율 전략 총괄은 이번 주 보고서에서 “이 시점에서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가 해외 투자자들의 달러 자산 헤지 유인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고 평가했다.
'킹 달러' 부담
투자자들은 무엇보다 달러 강세론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과 제조업 부활 계획이 상대적으로 강한 달러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그동안 간헐적으로 “달러의 강도와 위상을 지키겠다”고 언급해 왔지만 실제 '속내'는 이와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버거 버먼의 글로벌 투자등급 채권 공동대표 타노스 바르다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여전히 ‘킹 달러(king dollar)’라는 개념을 믿고 있다”면서도 “다만 올해 초와 같은 과도한 수준의 강세보다는 조금 약한 달러를 선호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달러 지수가 110 수준에 머무른다면 미국 내 제조업을 되살릴 방법이 없다”면서, 단기적으로 달러 지수가 95~100 사이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 초반 달러 지수는 97.975선에서 거래됐다.
스코샤뱅크의 외환 수석 전략가 션 오즈번도 “미국이 굳이 달러 약세 의도를 대외적으로 드러내지는 않겠지만, 달러 약세를 막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향후 1년가량 달러가 주요 통화 대비 추가로 5~7%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