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기아가 지정학적 갈등의 수혜자가 되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의 ‘추월 차선’에서 질주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 신문은 “현대차와 기아가 이미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고, 특히 하이브리드 차량의 인기가 높지만, 지정학적 이유로 전기차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더 강화했다”고 전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등은 값싼 중국산 전기차의 범람을 막으려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금지 등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 모두에게 미국 시장이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다고 이 매체가 강조했다. 골드만삭스는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이 10%를 넘었다고 밝혔다. 또 이 두 회사의 북미 지역 수입은 지난 5년 사이에 2배로 증가했고, 투산이나 산타페와 같은 SUV는 미국 시장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골드만삭스가 강조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그린 기술 분야에서 성공했다. 현대차의 지난해 미국 시장 판매 차량 중에서 전기차가 약 8%를 차지했고, 유럽 시장에서는 이 비율이 16%에 달했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의 10%가량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였다.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차량 시장 선전은 향후 몇 년 동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WSJ가 지적했다. 노무라 증권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6년 사이에 글로벌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 예상 증가율이 26%로 순수 전기차 증가율 19%보다 높다. 노무라는 특히 미국 시장에서 이 기간에 하이브리드 차량 증가율이 34%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대립의 수혜자로 꼽힌다. 미국은 고율의 관세 부과로 값싼 중국산 전기차의 수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 전기차는 현재 한 대당 7500달러를 주는 미국의 보조금 지급 대상 차량에서 제외돼 있으나 현대차가 76억 달러를 투자해 건설하는 조지아 공장이 올해 말 완공되면 이곳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전기차 전용 공장을 오는 10월 조기 가동하면서 미국 내 톱3 자동차 회사로 도약할 것으로 자동차 업계는 예상한다. 현대차 그룹은 올해 10월 '현대차 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가동한다. HMGMA는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애초 2025년 양산 계획이었으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 제외됨에 따라 양산 시점을 앞당겼다.
현대차 그룹은 지난해 제너럴모터스, 토요타, 포드에 이어 미국 판매 4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에서 165만여 대를 팔았다. 3위인 포드의 198만5000대와 약 30여만 대 차이가 난다. HMGMA가 완성되면 현대차 그룹의 북미 생산 능력은 기존 연산 약 70만 대 수준에서 연산 100만 대 이상으로 뛰어오르게 된다.
세계 5위의 인도 자동차 시장도 현대차 그룹의 핵심 공략 대상으로 떠올랐다. 현대차는 지난 17일 인도 현지법인인 현대차인도가 인도증권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인도증권거래위원회(SEBI)에 기업공개(IPO) 관련 예비서류(DRHP)를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로이터 통신 등은 현대차 인도법인이 SEBI에 제출한 신청서에서 모회사인 현대차가 보유한 인도법인 주식 8억1200만 주 중 최대 1억4200만 주, 전체 지분의 17.5%를 매각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IPO를 통해 현대차가 최대 30억 달러(약 4조1670억원)를 조달해 인도 IPO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현대차는 인도 내에서 매출 기준으로 마루티 스즈키에 이어 둘째로 큰 자동차 제조업체다. 현대차는 1996년 인도법인을 설립했고, 1998년 타밀나두주(州) 첸나이 공장에서 첫 모델 쌍트로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WSJ는 “현대차가 한·중 관계 악화 등을 고려해 지난 10년간 중국에서 인도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중국 전기차 업체 BYD가 인도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제안을 지난해 거절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