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기업 화웨이가 미국의 잇따른 제재에도 불구하고 자체 개발 반도체 라인업과 생산량을 조용히 확대하며 ‘탈 미국’에 속도를 내고 있다.
21일(현지시각) IT 전문매체 WCCFtech는 화웨이가 올해 초 자사의 최신 스마트폰 ‘퓨라 70(Pura 70)’ 시리즈를 통해 선보인 자체 개발 5G칩 ‘기린 9010’ 외에도 이 칩의 확장 라인업인 ‘기린 9010L’도 함께 출시하는 등 고성능 자체 칩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WCCFtech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한 사용자는 자신이 구매한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노바 12 울트라 스타 에디션’ 제품에 기린 9010L 칩이 탑재되어있다는 내용의 영상을 중국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빌리빌리에 올렸다.
기린 9010L 칩은 퓨라 70에 탑재된 기린 9010 칩의 저사양 버전이다. 12개의 코어를 탑재한 기린 9010과 달리, 9010L는 9개의 코어만 활성화되어 있으며, 작동 속도와 성능 등도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린 9010L 칩의 존재가 소비자를 통해 알려진 것은 화웨이가 자사 최신 스마트폰에 탑재된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의 모델명과 구체적인 사양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출시한 퓨라 70 역시 화웨이는 정확한 AP 사양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실제 제품 출시 후 기린 9010 칩을 탑재한 것이 드러났다. 화웨이가 자사 스마트폰 AP 정보를 숨기는 이유는 현재 각종 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해 화웨이가 ‘메이트 60 프로’ 스마트폰에 자체 개발·제조한 7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5G 칩 ‘기린 9000S’를 탑재한 것으로 드러나자 제재를 더욱 강화한 바 있다.
WCCFtech는 기린 9010이 SMIC의 7나노 공정으로 제조된 만큼 기린 9010L도 같은 공정으로 제조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각에서는 기린 9010 칩을 제조하면서 나온 불량 칩을 저사양 모델인 9010L로 재활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기린 9010L의 존재는 이제 화웨이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체 기술과 제조 능력만으로 첨단 7나노급 반도체를 다양한 종류로 충분한 물량을 공급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첫 7나노 5G 칩으로 선보인 ‘기린 9000S’만 해도 전문가들은 낮은 수율(양품 반도체 제조 비율)과 그로 인한 비용상승 및 공급 부족을 우려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차세대 모델인 기린 9010 칩은 물론, 확장 제품인 9010L 칩을 함께 생산할 정도로 공정 기술과 수율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WCCFtech는 화웨이가 원본 대비 사양을 낮춘 기린 9010L 칩을 선보일 정도로 첨단 공정 반도체의 생산량이 늘었고 제조 비용도 줄었을 것이며, 올해 말 선보일 차세대 5나노 공정 기반 차세대 기린 칩에서도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화웨이는 최근 미국의 추가 제재로 인텔과 퀄컴 등 미국 업체의 최신칩 수급이 어렵게 되면서 스마트폰 뿐 아니라 태블릿 및 PC 제품에도 자체 개발 칩 탑재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