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반도체 장비와 관련 서비스를 중국에 제공하지 말라고 압박을 가중하고 있다. 27일(현지 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어떤 것(장비)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떤 것은 제공하지 않는 게 중요한지 결정하기 위해 우리 동맹국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주요 부품들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가 동맹국들과 대화하는 주제”라고 설명했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미국이 중요하지 않은 장비에 대한 동맹국 기업들의 서비스를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에스테베스 차관이 최근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고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지 않기로 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국의 동맹국들이 중국에 이미 수출한 장비에 필요한 서비스와 부품의 판매 통제에도 협조해 달라고 요구했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21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사례 중 하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노후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을 중단했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했다.
그는 “핵심 한국 기업들이 중고 반도체 제조 장비를 더는 중국에 판매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네덜란드와 일본 정부도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를 발표하고, 시행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네덜란드와 일본과 같은 수준에서 한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에 협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대러시아 서방 제재를 고려해 노후 반도체 장비의 판매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FT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두 반도체 업체의 이번 조치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대러시아 제재와 관련이 있고, 미국의 반발에 대한 우려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FT는 미국 정부가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를 시행한 이후인 지난 2022년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고 반도체 기계를 보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의회 청문회 증언에서도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과 유사한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도입하도록 설득해 미국 기업과 동맹국 기업 간에 동등한 통제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미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와 이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와 부품을 미국 기업이 제공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고,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이 이와 유사한 조처를 해주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미국 정부가 현재 시행하는 중국에 대한 독자 수출 통제를 동맹국 기업이 포함된 다자 체제로 확대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미국은 2022년 10월 자국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막은 뒤로 네덜란드와 일본에 비슷한 수출 통제를 도입하라고 압박했다. 네덜란드와 일본은 일부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통제하고 있으나 미국과 달리 자국 기업들이 수출 통제 시행 전에 이미 판매한 장비를 중국이 계속 운영하는 데 필요한 유지·보수 등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18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nm 이하 로직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 통제 조처를 발표했다. 미국은 이어 반도체 핵심 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와 일본의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 동참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