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슈퍼엔저가 지속되면서, 일본의 추가 금리정책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일본이 단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 향방은 미 연준의 정책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22일 엔달러 환율은 150엔을 넘어 151.56엔까지 올랐다. 19일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결정했지만, 연준이 금리를 동결하고 연내 3차례 금리 인하를 재천명하면서 달러 강세가 이어져 2022년 기록한 최저치인 151.95엔에 가까워졌다. 유로화 대비로는 2008년 이후 최저치다.
이로 인해 일본 도쿄증시는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지속되는 엔저와 미국발 증시 훈풍으로 금리 인상 이후에도 일본 주가가 올라가고 있다. 22일 도쿄증시에서 닛케이지수는 사상 최초로 장중 4만1000대를 돌파했고, TOPIX도 버블 경기 이후 34년 만에 2800지수를 뚫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일본 내수를 위협하는 인플레이션 핵심 요인인 슈퍼 엔저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도 21일 오전 환율에 대해 "높은 긴장감을 가지고 움직임을 주시하겠다"고 언급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또한 같은 날 "엔저가 경제와 물가 전망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통화정책으로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블룸버그 애널리스트 그룹은 엔화 약세는 일본 주식시장에는 여전한 호재 요인이지만, 더 길어질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며 일본은행 개입 시점을 엔달러 152엔으로 내다봤다.
관건은 미 연준의 움직임이다. 연준이 금리를 동결함과 동시에 연내 3회 금리인하를 공표했기 때문에 일본은행이 엔저 방어를 위해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면 예상보다 빠르게 중립 금리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 캠프매니 인베스코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일본은행과 연준이 중립적인 금리 수준에서 만나게 된다면 저평가된 엔화는 최종적으로 달러 대비 15~20%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그 수준은 일본은행은 0.50% 내외, 연준은 3.0%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 집계 예상 중앙값은 중립 금리가 되면 연말까지 1달러=139엔 내외까지 엔화 강세가 진행되어 약 8% 상승할 것으로 집계했다.
문제는 단기간에 급격하게 금리차가 좁혀지면 세계로 나간 엔화 투자금 중 상당수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20조달러(약 2경6700조원)로 추산되는 막대한 ‘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 자금이 그것이다.
일본은 장기적인 마이너스금리를 하면서 전 세계 주요국에 돈을 가장 많이 빌려준 국가로 손꼽혀 왔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일본의 미 국채 보유액은 1조1382억달러로 2022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도 엔캐리 자금은 상당수 유입되어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일본인의 국내 상장 주식 보유 금액은 14조8650억원으로 집계됐다. 14조원 넘는 엔화 투자금이 한국 증시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만약 엔달러 금리가 줄어들어 엔캐리 자금이 역행하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루아침에 시장이 재편되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움직이는 쓰나미가 될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상으로 더 많은 자금이 일본에 묶이면, 미국 모기지 금리부터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금융까지 모든 것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앨런 러스킨 도이치뱅크 전략가는 "일본은행이 다음 회의에서 다시 긴축에 나서지 않는 한 외환시장은 몇 달 동안 '지금이 기회'라고 판단하고 엔화 자금을 이용한 캐리 트레이딩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오다마 유이치 메이지야스다 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중립 금리 수준이 불분명하다고 밝힌 만큼 금리 인상 폭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약속한 것은 아니다"라며 "시장이 현재 반영하고 있는 것보다 금리 인상이 더 진행될 가능성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츠자와 나카노 노무라증권 최고전략가도 "일본은행은 생각보다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 개방적이었다"라며 "엔저, 유가 상승, 물가 통계 상승세가 지속되는 등 추가 금리 인상 리스크가 높아진 만큼 빠른 추가 금리 인상도 결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