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이 열리면서 면세점 업계가 그간 움츠린 어깨를 활짝 펴고 도약할 채비에 나섰지만, 장밋빛 미래를 펼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전을 두고 치열하게 펼친 경쟁에서 과연 누가 웃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당락의 마지막 관문인 관세청 프레젠테이션을 일주일 앞두고 분주한 때를 보내고 있다. 최종 입찰 결과는 내달초로 예상되는 가운데 사업권 획득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어서다. 특히 국제공항에서의 면세점 운영 경험이 짧은 신세계디에프와 현대백화점면세점에게 절호의 찬스로 앞으로 펼쳐질 면세점 경쟁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DF1~5구역 전체에 베팅한 호텔신라와 신세계디에프와 DF5구역에만 도전하는 현대백화점은 3사 3색의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3월 입찰 1차 심사에서 각사의 경쟁력을 강조한 것인데,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을 바짝 추격 중인 호텔신라는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한 아시아 3대 허브공항에서의 면세점 운영 경험을 적극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디에프는 체험형 콘텐츠 등 차별화 매장 운영 능력을, DF7을 운영 중인 현대백화점은 명품 유치 능력을 적극 어필한 것으로 전해진다.
큰 이변이 없다면, 중복 낙찰 금지 규정에 따라 DF1~5구역 전체 도전하는 호텔신라와 신세계디에프가 DF1·2(화장품·향수·담배·주류) 사업권과 DF3·4(패션·액세서리·부티크) 사업권 중 1곳씩 나란히 나눠 갖게 될 전망이다. DF5구역(부티크)만 노리는 현대백화점면세점은 해당 구역 사업권 획득이 사실상 확정으로 추정된다.
기존과 달리 이번엔 10년 짜리 장기 사업권인 만큼 업계 고민도 깊었다. 사실상 승패를 가를 자릿세 때문인데, 롯데는 예상과 달리 보수적인 가격을 써내면서 심사 1차에서 탈락했다.반면, 그간의 임대료 부담에도 호텔신라와 신세계디에프는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해당 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인천공항공사는 올해 업계 부담을 낮추고자 임대료를 이용객 연동 방식으로 바꾸고, 최저 입찰가로 이용객 1이당 5364원으로 제시했는데, 이들은 이에 2배에 달하는 금액을 써냈다.
막대한 비용을 예상하면서도 통 큰 베팅을 건 까닭은 연 매출 3조원 규모의 사업장 인데다, 세계로 가는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국제공항에서의 운영 경험은 향후 글로벌 진출과 브랜드 협상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며 “특히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국제공항 운영 경험이라면 더욱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통 큰 베팅 변수될까
문제는 연간 3조원의 매출과 홍보 등 효과를 위해 베팅한 임대료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득만큼 실도 클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엔데믹에 여객수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항 방문객이 반드시 면세점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라서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특히나 면세점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소비가 옮겨가고 있어 불확실성도 크다. 이에 ‘승자의 저주’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은 높은 임대료를 써내면서 2015년 사업권을 따내는 데 성공하지만, 2018년 사드 사태 영향으로 면세점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결국 사업권을 반납하는 승자의 저주를 겪어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면서 임대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영향이 크다. 2017년도엔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운영 기간 2년을 남겨두고 사업권을 뱉어 냈다. 롯데면세점과 마찬가지로 사드 영향인데, 큰 손인 중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임대료를 비롯한 막대한 고정비용 부담에 사업을 포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이 잘 나와도 임대료 부담이 큰 탓에 인천국제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곳 중 이렇다 할 수익을 내는 곳은 없다"며 "줄줄이 사업권을 포기했던 2017년과 2018년 사이에는 내놓으라 하는 면세 사업자도 적자였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글로벌 2위 면세사업자였던 롯데면세점은 사드 보복이 한창이던 2017년 경에 임대료를 감안 한 월 손실액이 10~20억원에 달했다. 한화갤러리아 역시 운영 기간 3년간 1000억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남겼다.
물론 당시 상황가 달라져 임대료 부담이 덜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릿값이 차지하는 비용이 큰 상황이다. 이번 입찰 경쟁에서 최고가를 써낸 후보를 예로 계산한 결과, 코로나 전인 2019년 국제선 출발 여객 수(약3500만명) 기준 DF1~5의 연간 합산 임대료는 8800억원 수준이다. 2019년 기준 인천국제공항면세점 매출은 3조200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수익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고정비용을 제외하고 임대료만 매출의 30%를 차지해서다..
업계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당장의 수익보다는 미래를 위한 일종의 투자로 여겼다. 업계 관계자는 “규모의 경제로 움직이는 것이 면세 사업이기 때문에 인천공항 수준의 매출이 나오면 브랜드 협상에서의 지위가 달라지는 데 이는 곧 경쟁력”이라며 “해외에서 규모가 있는 공항 면세점에 입찰할 때도 좋은 사업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에 과감하게 입찰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19가 그랬듯 면세점은 정치·외교적 부분이나 질병 등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대외변수가 많다는 점에서 과거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오히려 보수적으로 접근한 롯데면세점이 또 다른 기회를 맞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중도하차하는 면세 사업자의 자리를 꿰찰 수도 있고, 이번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발을 빼면서 세이브되는 임차 보증금으로 시내점 역량을 강화해 나갈 수 있어서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해외 진출과 온라인, 시내면세점 등에 포커스를 맞추고 경쟁력을 갖추려 한다"고 전했다.
송수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sy12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