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국회와 농식품부, 말산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는 온라인 발매 도입을 골자로 하는 ‘한국마사회법’ 개정안을 심의했으나, 여야 의원들의 찬성에도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의 완강한 태도로 통과되지 못해 이달 중 다시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심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국회가 공개한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청소년 보호 문제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제시했고, 행정안전부가 장외발매소 소재 지자체의 세수 감소 우려를 들어 지자체간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온라인 발매의 취지는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경마에 국민의 부정적 인식과 경마는 사행성이 높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제도적 안전장치,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방안, 건전화 방안 등을 보완하고 온라인 발매분 세수 귀속과 관련된 법 개정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검토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기존의 반대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 농식품부 "국민 불신 때문에 도입 시기상조"...근거 자료도 대안도 없다
이날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박영범 농식품부 차관은 "온라인 발매 취지는 이해하나 경마 관계자의 잇따른 사고 등 경마와 마사회의 사회적 신뢰가 떨어져 당장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병홍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도 "외국은 경마를 레저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우리나라는 경마를 사행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온라인 경마에 신중해야 한다"고 동조했다.
그러나, 경마에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나 사행성이 높다는 인식의 근거로 삼을 여론조사나 수치자료가 있냐는 의원 질문에 박 실장은 “그런 자료는 없다”고 답했다.
부정적 인식을 심어놓은 책임이 농식품부에 있다며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묻는 의원 질문에 박영범 차관은 “지난해부터 경마혁신위원회를 구성해 혁신방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와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7월부터 정부와 말산업계,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한국경마혁신위원회’를 구성해 경마제도와 한국마사회의 혁신방안을 만들었으며, 지난 1월 혁신방안이 완성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 혁신방안에는 경마시행에 관한 마사회의 권한 분산, 경마산업 종사자의 권익보호, 승마 등 말산업의 다각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혁신위원회 참여자에 따르면, 지난해 혁신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이 혁신방안을 만든 외부 컨설팅업체인 삼일회계법인은 처음부터 혁신방안 안에 가장 시급한 과제로 '온라인 발매'를 담았다.
혁신방안을 만들던 때는 코로나19에 따른 경마 중단으로 마사회 경영난이 심각했던 시기로 마사회의 재무적 지속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혁신방안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익명의 관계자는 함께 혁신위원회에 참여했던 농식품부 관계자가 혁신방안에 온라인 발매를 삭제할 것을 삼일회계법인에게 강하게 요구해 결국 최종안에 온라인 발매 내용이 제외된 사실을 전했다. 혁신안과 온라인 발매를 결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주된 논리였다.
문제는 농식품부는 지금까지 삼일회계법인이 지적한 ‘마사회의 재무적 지속성’을 위한 다른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법안심사소위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혁신방안과 별개로 말산업계의 위기대응방안을 계속 물었으나 농식품부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소위 의원들은 3월에 열릴 법안심사소위 때까지 온라인 발매를 도입할 경우 예상되는 장단점, 예상 문제점과 대처방안, 해외사례, 온라인 발매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의 대안을 마련해 제출하라고 농식품부에 요구했다.
혁신위원회 참여 익명의 관계자는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혁신방안과 별개로 현 위기상황을 타개할 방안이 필요한데, 농식품부는 1년째 ‘신중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 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온라인 발매를 미루기 위해 혁신방안을 핑계로 삼고 시간끌기만 해왔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 농식품부 "말농가 어려움 별로 크지 않다"...말농가 "말산업 주무부처 맞나" 분통
또한, 농식품부가 제시한 온라인 발매나 위기대응책 마련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들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같은 온라인 발매를 골자로 하며 현재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광위)에서 심의 중인 ‘경륜·경정법’ 개정안은 과몰입 방지대책과 처벌규정 등이 들어 있으나 마사회법 개정안에는 그런 보완 규정들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식품부 관계자의 말과 달리 4개 마사회법 개정안들은 경륜·경정법과 같이 각각 3~4개 조항에 걸쳐 과몰입 예방조치, 건전화방안 수립의무, 징역형 등 처벌규정을 담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청소년 접근을 막기 위해 본인확인이 필수인데, 금융권과 달리 온라인 발매에 주민번호를 사용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해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온라인 발매를 운영하는 로또·스포츠토토는 주민번호 없이 휴대폰 실명인증으로 본인확인을 하고 있다.
온라인 마권 발매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사감위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 발매를 도입하면 휴대폰에 보이는 경마 실황 화면을 다른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실시간 유출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마사회는 실황영상 중계 없이 온라인 발매를 도입할 수 있으며 워터마크 등 기술적 방법으로 일정부분 해소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법안심사소위에서 박영범 차관도 "(온라인 발매와 관련해) 기술적인 문제는 많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법안심사소위 의원은 "세계 60여개 경마시행국 중 한국과 이슬람권 국가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온라인 발매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기술·제도적으로 온라인 발매가 검증됐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말산업계 위기대응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동안 무관중 경마를 통해 꾸준히 지원해 왔으며, 피해가 더 커지면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무관중 경마를 통한 지원은 마사회의 사내 유보금을 활용하고 있어 대응책이라 보기 어렵고, 마사회 유보금도 오는 5월께 모두 고갈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말산업계의 피해가 우려만큼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고 말해 위기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무관중 경마를 꾸준히 해와서 말산업계의 소득은 코로나19 이전의 70~80% 수준은 될 것“이라며 "최근 말 사료비 무이자 대출 신청을 접수했으나 신청한 농가가 거의 없었다. 이를 봐도 현 상황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며 말산업업계의 위기 인식과 상당한 괴리를 나타냈다.
이같은 농식품부의 인식에 경주마생산농가 관계자는 "무관중 경마로 배분되는 소위 생계형 상금은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 등 경마 종사자에게 배분되기 때문에 이들의 소득은 코로나19 이전의 60~70% 수준이 될 수 있다"면서도 "경주마를 구매하는 마주는 마필 관리비 보전도 제대로 받지 못해 새로운 경주마 구매를 엄두내지 못하고, 따라서 말생산농가의 소득은 코로나19 이전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라고 반박했다.
경주마생산농가 관계자는 "더 심각한 문제는 경주마가 팔리지 않기 때문에 현재 목장이 포화상태이고, 유지비, 인건비가 더 들어간다는 점"이라면서 "사료비 무이자 대출도 이미 다른 대출을 한도까지 받았기 때문에 신청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말산업 현장은 '붕괴 직전'이라고 호소하고 있는데, 말산업 육성 관리 주무부처 농식품부는 '우려 수준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하며 온라인 마권 발매 요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