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 신진섭 기자] 지난달 30일 양대 앱 마켓을 통해 국내에 출시된 SRGP(전략형 역할수행게임) ‘소녀전선’의 돌풍이 매섭다.
출시 20일만에 구글 플레이 매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소녀전선 위에는 ‘리니지IP(지적재산권)' 쌍두마차 ’리니지M'과 ‘리니지2’ 레볼루션 뿐이다. ‘리니지M(12)’세 버전을 제치고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섰다.
유저들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소녀전선 구글 플레이 평점은 4.7으로 매출 50위권 게임 중 1위다. 한 유저는 “국내 모바일 게임들이 아타리 게임이라면 소녀전선은 닌텐도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는 평을 남겼다. 즐비한 국내 모바일 게임 사이를 뚫고 중국 게임이 한국 게임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대체 뭘까.
◇‘소녀전선’, 게임 과금에 신물 난 한국 유저들 홀리다
가장 유저들의 만족하는 부분은 ‘소녀전선’이 무과금으로도 충분히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소녀전선’은 게임 내 캐릭터인 전술인형을 모아 전투에 나서는 수집형 SRPG로 ‘데스티니 차일드’, ‘몬스터 길들이기’ 등 인기 국내 게임과 전체적인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게임 내 콘텐츠를 수행하다보면 캐릭터를 수집할 수 있는 자원이 충분하게 쌓여 굳이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원활한 게임 진행이 가능하다.
국내 RPG의 공식을 깬 등급제도 눈길을 끈다. 국내 RPG는 고등급의 캐릭터가 저등급에 비해 압도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 과금유저와 비과금 유저의 격차가 게임 서비스 기간이 길어질수록 커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소녀전선은 저등급의 캐릭터라도 육성을 통해 고등급과 유사한 능력치를 갖게 될 수 있는 구조라서 과금에 대한 부담이 적다. 저마다 선호하는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는 플레이 자유도까지 갖춘 셈이다. 최고 등급인 5성도 획득확률이 3%로 국내 모바일 게임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현실의 경제력이 게임의 승패와 직결되는 대다수 한국 모바일 게임 구조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한국 유저들은 ‘소녀전선’을 ‘갓겜(신을 뜻하는 영어단어 갓과 게임의 합성어)’으로 떠받들고 있다.
‘소녀전선’ 한국 서버 책임자 ‘닥터 라이코’는 페이스북을 통해 “‘소녀전선’을 가성비가 좋은 게임으로 평가해 주고 있다”며 “현재 한국 모바일 게임들이 과금유도 시스템이 많다는 점과 ‘소너전선’이 직접적 과금 뽑기 시스템이 없고 정확한 확률을 공개한 점들이 잘 맞물려 흥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흥행 배경을 분석했다. 이어 “강제적인 이벤트와 뽑기를 통한 과금유도보다 게임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게임 퀄리티의 발전을 통해 유저들이 귀여운 전술소녀들과 소녀들의 스토리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소녀전선은 중국의 미카 팀(MICA TEAM)이 개발하고 대만 배급사 롱청이 서비스 중이다. ‘한국 손을 타지 않았다’는 것이 유저들이 꼽는 ‘소녀전선’의 성공 배경이다.
◇과금요소는 적은데 매출은 3위
‘소녀전선’은 뽑기 시스템 등으로 유저들에게 돈을 쓰라고 반강제하진 않지만 스킨(게임 내 캐릭터 의상) 판매로 자발적으로 돈을 지출하게 하는 BM(비즈니스 모델)을 택했다. 스킨은 캐릭터 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라이엇게임즈 ‘리그오브레전드’나 블리자드 ‘히어로즈오브더스톰’, ‘오버워치’ 등에서 사용했던 BM이다.
진화, 강화, 속성강화, 극, 초극 등의 자꾸만 허들을 높여가는 강화요소와 PVP(사용자간 대결) 등 경쟁요소도 최소화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PVP에 참여하고 강화를 거듭해야 하는 기존 게임들과의 차별점이다. 요일 던전 등 매일 접속해야만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접속 유도 콘텐츠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푸쉬 메시지’로 유저들의 접속을 유도하는 대다수 한국 모바일 게임과는 문법 자체가 다르다.
국내 주요게임사들이 신작 게임 출시 수달 전부터 TV, 온라인 등 플랫폼을 통해 막대한 광고비를 투입해 유저를 모으는데 비해 소녀전선은 유저들의 입소문을 타고 매출 3위에 올랐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중국 게임, 기획력까지 갖추다
업계 일각에서는 ‘소녀전선’의 성공이 단순한 이변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돼 온 중국 게임 개발사의 노하우가 녹아든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한국 개발사들이 ‘그래도 기획력은 우리가 우위’라며 방심한 동안, 중국이 자본력은 물론 기획력에서도 한국을 넘어서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수년간 대다수 국산 게임들이 단기적인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게임 개발에 몰두한 동안, 중국 게임 개발사들은 수익은 물론 게임 마니아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차별화된 게임 개발력을 갖추게 된 형국이다.
8월 카카오게임즈를 통해 국내 출시되는 ‘음양사’는 중국 넷이즈가 개발한 게임으로 전 세계 20억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 일본에 존재했던 일종의 퇴마사인 ‘음양사’와 이들이 부리는 ‘식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IP(지적 재산권)을 창출했다.
작년 7월 국내 출시된 중국 게임개발사 니키의 ‘아이러브니키’는 패션 등 여성유저를 공략한 콘텐츠를 앞세워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출시 초기에는 양대 마켓 인기 1위를 차지하고 현재까지 구글 플레이 최고 매출 30위권을 기록 중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저퀄리티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중국게임들의 선전이 선전을 거듭하며 한국 유저들의 중국 게임에 대한 편견도 허물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단순히 할만한 정도가 아니라 '기대가 된다'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자칫 잘못했다간 하반기 신작들이 '중국 게임보다 못하다'는 비판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오는 27일 출시되는 넥션 액션 RPG '다크 어벤져3'가 그렇다. 한국 모바일 게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RPG류인데다가 넥슨의 지나친 과금제 요소가 또다시 '다크 어벤저 3'에 등장한다면 중국 게임으로 눈이 높아진 유저들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전작인 '다크 어벤저 2'의 퍼블리싱은 게임빌이 맡았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MMORPG 중심인 한국 게임과 달리 중국 게임들이 유저들의 ‘취향을 저격’한 게임들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게임 강국임을 입증하기 위해선 다변화된 플랫폼 전략과 독창적인 게임을 통해 게임 마니아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동안 MMORPG 중심이었던 중국 게임들이 ‘소녀전선’과 같은 마니아를 공략하는 게임까지 내 놓으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 추세다. 중국이 진정한 게임 강국으로 성장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