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텍사스는 오랫동안 공화당의 안마당이었다. 1994년 이후 텍사스는 민주당 후보를 주 전체 선거에서 한 번도 당선시킨 적이 없다. 2024년 대선에서는 트럼프에게 14%포인트 가까운 차이로 승리를 안겼다. 민주당이 "이번엔 텍사스"를 외칠 때마다 결과는 늘 같았다. 2018년 베토 오로크의 돌풍도 결국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그 안마당이 무너졌다. 11월 3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제임스 탈라리코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공화당 켄 팩스턴 주 법무장관을 꺾었다. 개표율 99% 기준 득표율은 55.1% 대 43.0%다. 박빙이 아니라 12%포인트 차 완승이다. 주지사 선거에서는 지나 히노조사가 4선에 도전한 그레그 애벗 현직 주지사를 눌렀다. 1995년 앤 리처즈 퇴임 이후 첫 민주당 주지사이자 텍사스 최초의 라틴계 주지사다. 민주당은 주지사부터 철도위원까지 주 행정직 선거를 모두 휩쓸었다. 2년 전 트럼프에게 압승을 안긴 유권자들이 정반대로 돌아선 것이다.
후보 개인의 요인도 있다. 팩스턴은 2023년 뇌물·부패 혐의로 탄핵소추됐다가 주 상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흠결 많은 후보였다. 그러나 후보 탓만으로는 애벗의 패배를 설명할 수 없다. 애벗 캠프는 상대보다 수천만 달러를 더 썼다. 3선 현직이 돈을 쏟아붓고도 졌다. 분노는 사람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첫째는 데이터센터다. 텍사스는 인공지능 붐의 최전선이었다. 값싼 땅과 느슨한 규제, 독자 전력망을 앞세워 빅테크의 데이터센터를 빨아들였다. 애벗은 1년 전쯤만 해도 텍사스를 AI의 진앙이라 불렀지만, 이후 데이터센터 허가를 멈추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미 늦었다. 주민들에게 데이터센터는 일자리보다 고지서로 다가왔다. 휴스턴대 조사에서 유권자의 76%는 동네에 데이터센터가 생기면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라고 봤다. 79%는 텍사스에 지을 수 있는 데이터센터 수를 제한하자는 데 찬성했다. 공화당 지지층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4년만 해도 아무도 거론하지 않던 쟁점이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핵심 의제가 됐다.
둘째는 전기요금이다. 데이터센터 문제는 결국 전기요금 문제다. 히노조사는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전력 사용자가 자신이 유발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법이 바뀔 때까지 가정용 전기요금을 동결하겠다고 공약했다. 선거 광고의 상당 부분도 데이터센터 확장 반대와 애벗 책임론에 집중했다. 메시지는 단순했다. AI 기업의 이익을 위해 왜 우리가 요금을 더 내야 하는가. 2021년 겨울 한파 대정전을 겪은 텍사스 주민들에게 전력망은 생존의 문제다. 한 유권자는 인공지능보다 물이 낫다고 했다. 이 한마디에 민심이 담겨 있다. 성장이 누구의 지갑을 채우고 누구의 지갑을 터는가. 텍사스 유권자는 이 질문에 표로 답했다.
셋째는 이민 규제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텍사스 라틴계 표의 절반가량을 얻었다. 2016년의 약 34%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공화당은 이 표심을 믿고 지난해 연방 하원 선거구까지 다시 그렸다. 그러나 국경 통제를 바라는 것과 이웃이 거리에서 연행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한 조사에서 텍사스 라틴계 유권자의 56%가 현 정부의 이민 단속이 지나치다고 답했다. 이민자 노동력에 기대는 건설업계는 일손이 끊겼다고 호소했고, 국경도시 라레도의 성장은 멈춰 섰다. 단속은 표 대신 분노를 낳았다. 히노조사는 국경 지역에서 큰 표차로 이겼고, 엘패소와 웹 카운티가 대표적이다.
세 가지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모두 '생활비'라는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다. 데이터센터는 전기요금을 올리고, 이민 단속은 노동력을 빼앗아 물가와 지역 경제를 흔든다. 탈라리코가 선거 내내 일상의 비용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념 전쟁 대신 장바구니와 고지서를 이야기한 쪽이 이겼다.
텍사스의 반란은 텍사스 라는 한 주만의 이변으로 끝나지 않는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연방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텍사스 상원 의석은 그 결정적 조각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AI 시대의 정치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데이터센터는 첨단 산업의 상징에서 지역 주민의 부담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성장의 과실은 소수가 갖고 비용은 다수가 나눠 진다는 감각이 퍼지면 어떤 텃밭도 안전하지 않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퉈 AI 데이터센터 유치에 나서고 있다. 전력망과 요금, 용수와 주민 수용성에 대한 설계 없이 유치 경쟁만 벌인다면 텍사스의 분노는 머지않아 우리 차례가 될 수 있다. 텍사스 유권자들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그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