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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부유층 해외 이주에 26% 출국세 추진

자산 80만유로 이상·최근 10년 중 6년 거주자 대상…미실현 이익에도 과세
부유층 유치 위해 정액세제 도입했지만 잇단 증세…전문가들 투자 매력 약화 우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10월 28일(현지시각) 로마 키지궁에서 2027년 예산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10월 28일(현지시각) 로마 키지궁에서 2027년 예산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탈리아 정부가 자산 80만유로(약 12억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이 해외로 이주할 경우 아직 매각하지 않은 자산의 평가이익에 26%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세제 혜택을 통해 해외 부유층과 고소득 전문인력을 유치해 온 이탈리아가 이번에는 이들의 해외 이주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조치가 시행되면 이탈리아를 장기 거주지로 선택한 부유층뿐 아니라 앞으로 이주를 고려하는 해외 투자자와 전문인력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 이른바 '출국세' 도입 방안을 포함하면서 해외 부유층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해외여행이나 출국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세법상 거주지를 이탈리아에서 다른 나라로 옮기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자산 80만유로 이상 대상…매각하지 않은 평가이익에 26% 과세


멜로니 정부가 지난 주말 의회에 제출한 예산안 초안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해외 이주자의 미실현 자본이득에 26%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과세 대상은 자산 규모가 80만유로 이상이면서 해외로 거주지를 옮기기 전 10년 가운데 최소 6년 동안 이탈리아에 세법상 거주한 사람이다.
핵심은 자산을 실제로 매각해 이익을 확정하지 않았더라도 보유 기간 발생한 평가이익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주식이나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람이 해외로 이주할 때 해당 자산의 가치가 취득 당시보다 상승했다면 실제 매각 여부와 관계없이 그 차익이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새 세금이 자산 전체에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FT에 따르면 해외 이주 후 일정 기간 금융자산을 매각하지 않으면 납부한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환급 요건과 과세 범위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특히 이탈리아에 보유한 자산에만 적용되는지, 해외에 있는 자산까지 포함되는지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기존 정액세제의 적용을 받는 부유층이 새 출국세의 대상에 포함되는지도 쟁점이다.

로마의 법률사무소 키오멘티 소속 마우리치오 프레스카 선임 세무변호사는 “제안된 제도의 여러 부분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입법 절차가 초기 단계인 만큼 앞으로 몇 주 동안 의회의 심의를 거치면서 쟁점들이 명확해지거나 수정될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법률사무소 마이스토에아소차티의 마르코 체라토 파트너는 “초안상 기존 정액세제 적용자의 해외 자산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추가적인 명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유층 유치하려 세금 깎아주더니…정액세도 두 차례 인상


이번 출국세 도입안은 이탈리아가 지난 10년 동안 추진해 온 해외 부유층 유치정책과 대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고급 인재와 전문인력이 해외로 떠나는 문제를 겪어 왔기 때문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해외 부유층과 고소득 전문인력이 이탈리아로 이주하도록 다양한 세제 혜택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제도가 2017년 도입된 부유층 대상 정액세제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이탈리아로 이주한 부유층은 해외에서 발생한 소득 등에 대해 일정 금액의 세금만 납부하는 혜택을 최대 15년 동안 받을 수 있다.

도입 당시 연간 납부액은 10만유로(약 1억5000만원)였다.

이후 이탈리아 정부는 밀라노 등 주요 도시에 해외 부유층이 몰리면서 제기된 비판을 배경으로 최근 2년 사이 정액세를 두 차례 인상했다.

현재 신규 이주자에게 적용되는 연간 정액세는 30만유로(약 4억5100만원)에 이른다.

이탈리아는 해외에서 돌아오는 자국민을 포함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도 일정 기간 소득세 감면 혜택을 제공해 왔다.

새로 이주한 전문인력은 5년 동안 급여의 일부에 대해서만 소득세를 납부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정액세 인상에 이어 해외 이주 시 출국세까지 부과하는 방안이 제시되면서 이탈리아 세제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법률사무소 미시콘드레야의 찰리 소스나 개인자산·세무 부문 책임자는 “이번 출국세 도입안은 이미 이탈리아로 이주한 고객들에게 상당한 불안감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에도 고객들이 이탈리아 세제의 불안정성과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에 우려를 나타냈다면서 잇단 정액세 인상과 출국세 도입 논의가 향후 거주 계획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예상 세수 56억원 불과…부유층 이탈 우려


이탈리아 정부가 예상하는 출국세 수입은 크지 않다.

FT에 따르면 정부는 출국세 도입 첫해인 2027년 세수가 370만유로(약 55억6000만원)에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이후 4년 동안은 연간 670만유로(약 100억6000만원)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2032년부터는 세금 환급이 시작될 수 있어 연간 세수가 340만유로(약 51억1000만원) 수준으로 다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거액의 자산을 보유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세금이지만 실제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재정수입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셈이다.

세무 전문가들은 새 제도가 오히려 이탈리아의 해외 자본과 전문인력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회계·세무법인 무어킹스턴스미스의 팀 스토볼드 세무 책임자는 “출국세가 도입되면 일부 부유층이 과세 요건인 6년의 거주기간을 채우기 전에 이탈리아를 떠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조치가 이탈리아를 장기 거주지로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체라토 변호사도 세제 혜택을 기대하고 이탈리아 이주를 고려하던 부유층이 새로운 세금 부담을 우려해 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유층 과세 강화 세계적 흐름…미국도 유사한 제도 운영


이탈리아의 출국세 도입 논의는 세계 여러 국가와 지방정부가 부유층에 대한 과세 방식을 재검토하는 가운데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3일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일회성 5% 부유세를 부과할지를 결정하는 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해외 이주자에게 자본이득세를 부과하는 제도 자체는 이탈리아가 처음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순자산이 200만달러(약 26억8200만원)를 넘는 사람이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포기할 경우 전 세계 자산의 미실현 이익에 대해 자본이득세를 납부해야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경우 기존에 해외 부유층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출국세 도입이 갖는 의미가 다르다.

FT는 “이탈리아 정부가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동시에 해외 자산가와 전문인력을 끌어들이려는 기존 정책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출국세 도입안은 아직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실제 도입 여부와 과세 대상, 기존 세제 혜택과의 관계는 향후 의회 심의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다.

FT는 출국세가 최종 도입될 경우 밀라노 등 이탈리아 주요 도시를 거주지로 선택한 해외 부유층뿐 아니라 앞으로 이탈리아 이주를 고려하는 사람들의 장기적인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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