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1월 3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의 결과는 의석 교체에서 끝나지 않았다. 민주당이 상·하원을 함께 가져간 이번 선거에서 가장 뜻밖의 쟁점은 데이터센터였다.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56%가 AI와 데이터센터를 투표의 결정적이거나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함께 치러진 데이터센터 관련 주민투표 41건 가운데 개발 쪽이 이긴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텍사스에서는 신규 건설을 즉각 중단하겠다고 공약한 후보가 현직 주지사를 꺾었다. 반발의 뿌리는 전기요금이다. 2024년 이후 미국 가계 전기요금은 10% 넘게 올랐고, 데이터센터는 막연한 생활비 불만에 '눈에 보이는 과녁'이 되었다.
시장의 반응은 정치보다 빨랐다. 선거 다음 날 뉴욕증시는 불확실성 해소에 안도하며 다우지수가 1,500포인트 넘게 올랐지만, 반도체주만은 거꾸로 움직였다. 그다음 날 충격이 본격화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이후 최악의 하루를 향해 미끄러졌다. 마이크론은 13%, AMD는 14%,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은 8% 안팎 급락했다. 개장 50분 만에 미국 증시에서 2조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한국 시장은 더 아팠다. 5일 코스피는 5.28% 내린 5,383.80으로 마감해 7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7.57%, SK하이닉스는 9.46% 떨어졌고, 외국인은 하루에만 3조 원 넘게 순매도했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모두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반도체와 그 장비에 쏠린 한국 증시의 구조가 고스란히 약점으로 드러난 하루였다.
시장이 겁을 먹은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반도체 기업,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만드는 메모리 기업의 실적 전망은 미국 데이터센터가 '예정대로 완공되어 가동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텍사스 한 곳이 미국에 계획된 데이터센터 용량의 4분의 1이 넘는다. 그 텍사스와 오하이오, 조지아에 데이터센터에 회의적인 주지사가 들어섰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선거 직후 전국적 모라토리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월가 일각에서는 내년 AI 관련 설비투자 전망치 1조 2천억 달러를 다시 따져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에 계획된 데이터센터의 10%가량이 무산될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데이터센터 착공이 늦어지면 GPU 발주가 늦어지고, GPU 발주가 늦어지면 HBM 주문이 밀린다. 주가는 이 연쇄를 하루 만에 가격에 반영하려 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하나로 모인다. 빅테크는 그래도 데이터센터를 더 늘릴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늘린다. 다만 더 비싸게, 더 느리게, 더 많은 동의를 구하며 늘리게 될 것이다. 경쟁의 논리는 선거로 바뀌지 않는다. 연산 능력에서 밀리면 모델 경쟁에서 밀리고, 모델에서 밀리면 클라우드와 광고, 소프트웨어 시장 전체에서 밀린다. 민주당 안에서도 셈법은 한 갈래가 아니다. 건설노조와 가까운 의원들은 데이터센터가 만드는 공사 일자리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건설 중단 법안이 실제로 통과될 가능성은 낮고, 정책은 건설 저지보다 비용 부담 쪽으로 모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는 쓰는 쪽이 가져오라는 원칙, 송전망 비용을 일반 요금에 떠넘기지 말라는 요구가 새 표준이 될 것이다.
이번 급락은 데이터센터의 '양'이 사라질 위험보다 '조건'이 바뀌는 데 따른 재평가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문제는 조건의 변화도 주가에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첫째, 같은 연산 능력을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이 오른다. 빅테크가 전력과 송전망 비용을 떠안으면 투자 대비 수익률은 낮아지고, 투자자들은 그만큼 설비투자 규모에 더 엄격해질 것이다. 둘째, 시간표가 흔들린다. 반도체 실적은 데이터센터의 완공 시점에 민감하다. 착공과 가동이 반년만 밀려도 분기 실적과 수주 가시성은 크게 달라진다. 셋째, 변동성이 일상이 된다. 지금까지 반도체 주가를 움직인 변수가 공급망과 기술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주 정부의 인허가와 공공요금위원회의 결정, 지역 주민투표가 함께 주가를 흔든다. 반도체가 정치 리스크를 직접 떠안는 업종이 된 것이다.
한국에 주는 함의는 무겁다. 코스피의 상당 부분을 반도체 두 종목이 떠받치는 구조에서 미국 지방 정치의 변화는 곧바로 한국 투자자의 계좌로 전해진다. 앞으로 볼 지표도 달라져야 한다. 빅테크의 분기별 설비투자 가이던스, 미국 주요 주의 데이터센터 인허가 동향, 그리고 계획 대비 실제 완공률이 HBM 수요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가 될 것이다. 반대로 자가발전, 소형원전, 에너지저장장치, 저전력 반도체와 고효율 냉각처럼 '전기를 덜 쓰거나 스스로 마련하는' 기술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전력 효율이 곧 인허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국내 데이터센터 정책도 마찬가지다. 전력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지역에 무엇을 돌려주는지에 대한 답 없이 AI 강국을 말하기는 어렵다.
데이터센터는 그래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이제 '얼마나 짓느냐'보다 '어떤 조건으로, 언제 완공하느냐'를 묻기 시작했다. 이번 중간선거는 AI 산업에 사회적 비용이라는 청구서를 보냈고, 반도체 주가는 그 청구서를 가장 먼저 받아 든 곳이다. 그 비용을 정직하게 계산해 내는 기업과 시장만이 다음 상승 국면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