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단일 해킹으로는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다. 사건을 한 범죄 집단의 일탈로 읽어서는 본질을 놓친다. 오늘날 북한에서 해킹은 국가가 기획하고 운영하는 하나의 국책사업이다. 그 성격을 이해하려면 '해킹'이라는 말이 어디서 출발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어 동사 'hack'은 본래 도끼로 나무를 마구 찍어낸다는 뜻이다. 거칠지만 요령 있게 일을 해치운다는 의미가 여기서 파생됐다. 이 단어가 기술의 언어가 된 곳은 195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었다.
MIT 철도 모형 클럽의 학생들은 복잡한 배선 문제를 정석이 아닌 기발한 우회로로 풀어내는 일을 '핵'이라 불렀다. 그런 재주를 지닌 이를 '해커'라 칭했다. 당시 해커는 시스템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다루는 사람을 가리키는 찬사였다. 이들이 초기 컴퓨터로 무대를 옮기면서, 정보는 자유로워야 하고 실력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해커 윤리'가 자리 잡았다.
의미가 뒤집힌 것은 1980년대다. 개인용 컴퓨터와 모뎀이 보급되자 남의 시스템에 몰래 들어가는 사건이 잇따랐다. 영화와 언론은 해커를 침입자로 그려냈고, 1988년 인터넷을 마비시킨 '모리스 웜'은 그 이미지를 굳혔다. 원래의 의미를 지키려던 이들이 악의적 침입자를 '크래커'로 구분하자고 했지만 대중의 인식을 돌리지는 못했다.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해킹은 금전을 노리는 범죄 산업이 됐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주체가 다시 바뀌었다. 이란 핵시설을 겨냥한 '스턱스넷'이 보여주듯, 국가가 사이버 공간을 전장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장난에서 범죄로, 범죄에서 국가의 무기로. 해킹의 역사는 곧 그 주체가 커져 온 역사다.
그 마지막 단계를 가장 철저하게 체계화한 나라가 북한이다. 김수키, 라자루스, 안다리엘 등 주요 해킹조직은 모두 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 산하로 파악된다. 미국 법무부는 기소한 북한 프로그래머들이 정부의 지시로 움직였으며, 훔친 자금은 정권을 위해 쓰였다고 적시했다.목적은 분명하다. 국제 제재로 막힌 외화를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들이는 것이다. 유엔은 사이버 공격이 북한 외화 수입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고 본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북한 연계 조직이 지난해 탈취한 가상자산은 20억 2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이 돈은 핵·미사일 개발의 자금줄로 흘러간다.
표적은 정권의 정책 목표에 따라 정해진다. 국정원은 북한의 국내 조선업체 해킹이 김정은의 군함 건조 지시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북한이 2025년을 '보건 혁명의 원년'으로 선언한 뒤에는 국내 의료·바이오 분야를 향한 공격이 급증했다. 인력 양성도 국가가 맡는다. 탈북 공학도 출신 박충권 의원은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의 컴퓨터공학개론 첫 장이 '해킹'이었다고 증언했다. 기획, 인력, 예산, 성과 관리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국책사업인 셈이다.
국가에는 국가로 맞서야 한다
국가가 운영하는 해킹에 개별 기업의 보안 담당자 몇 명이 맞서는 구조로는 승산이 없다. 바이낸스 사건이 보여주듯 공격은 가장 약한 고리, 곧 사람과 협력업체를 파고든다. 한국은 북한 해킹의 최대 표적이면서도 사이버안보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해커라는 말은 한때 창의성에 대한 찬사였다. 그 재능이 한 정권의 무기고를 채우는 데 쓰이는 지금, 사이버 안보를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다루는 입법과 상시 대응 체계, 그리고 탈취 자금의 이동을 막는 국제 공조가 시급하다. 사후 수습이 아니라 선제 탐지가 답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