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반도체와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전환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는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통제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이 주도해 온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에, 소프트웨어 공룡 오라클(Oracle)이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화려한 도전의 이면에는 주가 급락과 실적 부진이라는 차가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오라클의 창업주 래리 엘리슨은 1944년 뉴욕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폐렴을 앓은 뒤 이모 부부에게 입양되어 시카고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그는, 생물학적 어머니와는 성인이 되어서야 재회했다. 그는 일리노이 대학교와 시카고 대학교를 다녔으나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다. 유년기의 불안정한 환경과 학업의 중단은 그에게 오히려 제도권에 얽매이지 않는 강력한 야생성을 심어주었다. 버클리로 이주한 그는 암펙스(Ampex)와 같은 기술 기업을 거치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눈을 떴고, 여기서 축적된 엔지니어링 감각은 오라클 설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오라클의 초기 역사는 중앙정보부(CIA)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1970년대 후반, 엘리슨이 설립한 초기 회사(SDL)는 CIA의 의뢰를 받아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코드네임이 바로 '오라클'이었다. 엘리슨은 CIA의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IBM이 발표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DBMS) 논문의 무한한 잠재력을 간파했다. 그는 CIA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전 세계 데이터베이스 시장을 제패할 상용 솔루션을 내놓았다. 즉, 오라클은 국가 안보와 기밀 정보의 효율적 처리를 고민하던 CIA의 거대한 요구 속에서 탄생한 자식과도 같다. 이 인연은 오라클이 이후 정부 기관 및 금융권의 핵심 인프라를 독점하는 강력한 발판이 되었다.
래리 엘리슨은 실리콘밸리의 정형화된 경영인과는 거리가 멀다. 요트 대회를 위해 수억 달러를 쏟아붓고, 하와이의 섬 하나를 통째로 사들이는 그의 행보는 종종 '기행'으로 비춰진다. 그는 전투기 조종을 즐기며, 거침없는 독설로 경쟁사들을 몰아붙이는 공격적인 성향을 가졌다. 이러한 그의 '괴짜'적인 면모는 경영에서도 드러나, 오라클의 성장을 위해 수많은 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인수합병(M&A)했다.정치적으로도 그는 독특한 행보를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와의 긴밀한 관계는 오라클이 틱톡(TikTok) 미국 사업권 인수를 시도하던 시기에 명확히 드러났다. 그는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실리콘밸리 내에서 드물게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는 거물로 자리 잡았으며, 이러한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해 오라클의 클라우드 전략을 정부 부처와 강력하게 연결하려 노력했다.
최근 오라클은 AI 워크로드를 감당할 수 있는 '하이퍼스케일러'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하이퍼스케일러란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수십만 대의 서버를 운영하는 클라우드 인프라 제공자를 의미한다.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OCI)는 엔비디아의 GPU를 가장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제어하는 네트워크 기술에서 차별점을 보이며,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레이크 구축에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시장의 평가는 냉혹하다. 최근 오라클의 주가는 고공행진하던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달리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시장은 오라클이 전통적인 라이선스 매출 구조에서 클라우드 중심의 수익 모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을 '실적 둔화'로 읽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오라클은 실적이 부진한 '아픈 손가락'으로 분류된다. AI 시장 진입을 위해 투입하는 막대한 인프라 비용에 비해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가 투자자의 기대를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오라클의 실적이 부진한 근본적인 이유는 '태생적 한계'에 있다. 구글이나 아마존은 처음부터 데이터 중심의 클라우드 구조로 태어난 기업들이다. 반면 오라클은 탄탄한 라이선스 매출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래리 엘리슨의 제국이 클라우드라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스스로 파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증가는 오라클을 빅테크 중에서도 실적 방어에 가장 취약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이 AI와 클라우드를 결합하여 시장을 장악하는 사이, 오라클은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로서 고전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오라클이 변신하는 동안 보여주는 수익성 하락을 더 이상 '미래를 위한 투자'로만 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라클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전 세계 대기업들의 핵심 데이터가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데이터는 AI 모델 학습을 위한 최고의 자산이다. 오라클이 보유한 전 세계 엔터프라이즈 고객과의 신뢰 관계는 그 어떤 신생 AI 기업도 흉내 낼 수 없는 거대한 해자(Moat)다. 래리 엘리슨의 경영 철학은 언제나 그랬듯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과감한 베팅'을 하는 것이었다. 오라클이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에서 인프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반도체 활용 기술을 고도화한다면, 수익성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다.
오라클의 도전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주가 급락과 실적 부진은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데이터가 지능이 되는 시대, 데이터를 가장 잘 다루는 기업 오라클의 본질적 역량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프트웨어 제국을 건설했던 래리 엘리슨의 저력이 하이퍼스케일러라는 인프라 전장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인가. 오라클이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2026년 이후 AI 인프라 생태계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데이터 관리의 명가가 인프라 지배자로 거듭나기 위한 그 고통스러운 변신 과정을, 우리는 시장의 회의론 속에서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오라클의 꿈은 이제 막 시험대에 올랐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